[취재일기] 정부 지원은 5억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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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빛낸 역사상 최고의 영웅은 누구인가. 많은 사람은 나폴레옹을 첫손으로 꼽는다. 그러나 실제 프랑스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보면 그게 아니다. 파스퇴르를 꼽는 사람이 훨씬 많다. 정복자보다 백신 개발로 인류 보건에 기여한 과학자가 훨씬 칭송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을 보자. 12일은 인류 의학 역사에서 한국이 우뚝 선 날로 기록될 만하다. 서울대 의대 문신용,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교수 등 14명의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사람 난자를 이용해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세포는 난치병 치료를 위한 세포를 무제한 만들어낼 수 있는 꿈의 기술로 평가된다.

이들은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이번 연구의 주역인 黃교수를 비롯한 40여명의 연구원은 일요일.공휴일도 없이 하루 14시간씩 연구에 매달렸다.

난자 채취조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도축장으로 갔다. 이들이 처리하는 동물 난자만 하루 1천5백여개나 된다. 하지만 많은 연구원의 월 급여는 고작 1백만원 정도다.

黃교수 역시 전셋집을 전전하며 연봉 5천만원을 받았다. 정부는 지난해 5억5천만원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이 돈으론 실험 재료를 겨우 구입할 수 있을 뿐이다. 인건비 등 黃교수가 지출하는 연구비의 절반은 익명을 요구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채웠다. 생명윤리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비판도 이들을 압박했다. 배아 연구를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범죄행위로 매도했다.

연구 중단을 요구하는 협박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단지 아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다 자란 태아를 해마다 60만여명이나 낙태 시술로 죽이고 있는 게 우리의 현 주소다. 이 연구는 난치병 환자의 생명이 걸린 절박한 문제이기도 하다.

黃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연간 60조원에 달하는 거대 의료시장을 만들 전망이다. 영국이 왜 서둘러 치료용 배아 복제를 허용했는지 되새겨 봐야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거둔 과학자들의 쾌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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