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는] 사행산업 유치경쟁 뒤탈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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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사업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총선을 간접 지원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따른다. 지자체들의 장밋빛 청사진은 해당 주민들의 입장에선 가슴을 뛰게 하는 멋진 뉴스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이다.

지자체들은 그 예산을 어떤 식으로 마련하려고 하나. 갖가지 방법들이 동원되겠지만 그중 하나가 카지노.경륜장(競輪場).도박장 등 오락 및 사행(射倖)사업의 유치가 아닐까 싶다. 실례로 광주시와 전남도는 오래 전부터 경륜장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몰두해 왔다.

시나 도가 내미는 주장은 경륜장 건설을 통해 고용을 늘리고 지방세수를 확대해 지역발전 재원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또 관광사업과 연계해 주민들의 소득에까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국 최하위 수준의 재정자립도를 보이는 광주.전남지역인 만큼 관내 자치단체들도 동조하는 입장이다. 주민들도 해마다 시.도의 현안 사업들이 재정문제로 좌절하는 것을 보면서 사행사업의 부작용을 우려하면서도 지지하는 분위기다. 지방의회는 아예 앞장서 사업 추진에 힘을 쏟고 있다.

이처럼 각 지자체가 오락 및 사행사업을 경쟁적으로 유치함으로써 전국은 수많은 도박장으로 넘쳐나고 있다. 카지노를 비롯한 각종 도박장 시설이 이미 50여곳에 이른다.

지자체들엔 오락 및 사행사업이 지방재정의 어려움을 단박에 해결할 묘수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업의 성공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경륜장 사업이 특히 그러하다. 1천2백억원 정도가 필요한 경륜장 사업은 사업비 마련 자체가 쉽지 않다. 전남도는 타당성 연구 결과 경륜장 사업으로 연간 5백억원을 벌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실시한 검증에선 연간 2백50억원에 달하는 운영비도 어려운 2백30억원 정도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결국 막대한 사업 비용으로 지방재정에 부담만 안길 우려가 큰 것이다. 그만큼 주민 부담도 늘 수밖에 없다.

사행사업은 이처럼 경제적 문제 외에 특히 주민들의 정신이 황폐화하는 중독문제로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야기한다.

광주.전남지역의 도박 중독자는 이미 30만명이 넘었다. 그런 상황에서 카지노에 못지않은 중독 폐해를 가져올 경륜장을 소모적 경쟁까지 하면서 유치할 이유가 뭔가. 경륜장이 건전 오락이라는 주장은 이미 드러난 중독 폐해로 타당성을 잃고 있다.

사행사업은 진짜 건전한 레저산업의 육성을 막는다. 주민들의 가처분소득이 각종 도박장에 집중되면 정말 가족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다른 레저 부문에 대한 소비가 크게 위축되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 단기적 세수확대를 위해 사행사업의 유치가 불가피하다고 해도 시.도는 그로 인한 폐해방지 대책 정도는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 도박장 사업수익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를 정해둬야 하고, 부작용을 치유할 수 있는 대응 시스템을 치밀하고 책임감 있게 구축해야 한다.

지방정부의 무분별한 사행사업 추진에는 제 역할을 못하는 중앙정부의 책임도 크다. 적절한 근거나 타당성 없는 사업은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해야 함에도 문화관광부 등 중앙정부의 어정쩡한 태도가 지자체로 하여금 '무조건 시작하고 보자'식의 관행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라 차원에서 지자체들의 사행사업 유치 열풍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도박산업 추진의 근거가 되고 있는 레저세를 국세로 전환하는 등 대안은 많다. 매사가 그렇듯 문제는 의지다.

김재석 광주 경실련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