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마을] 커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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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 사회시험 시간이었다. 헷갈리는 문제가 여럿 있었지만 유독 그중 하나가 나를 애먹였다.

 ‘조선을 세운 사람은 누구인가?’

 그 인물의 이름을 쓰는 주관식 문제였다. 읽어본 위인전이 별로 없던 나는 몇몇을 겨우 생각해 냈다. 이순신·을지문덕·강감찬…. 을지문덕에 필이 꽂혔다. 그러나 신중히 생각해야 했다. 공부는 잘하고 봐야 한다는 담임선생님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티 나게 더 좋아하셨다. 시험을 보고 나면 1등은 맨 앞에 꼴등은 맨 뒤에 앉게 했다. 나는 항상 뒷자리를 맴돌았고, 시험을 볼 때마다 은근히 앞자리로 가고 싶었다. ‘그래 이 문제를 맞으면 저 앞으로 가는 거야’. 망설임 없이 또박또박 답을 썼다. 을·지·문·덕. 기분이 좋아지니 다음 문제들도 쉽게 풀렸다. ‘흠, 이정도면 됐겠지’. 으쓱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반 아이들의 동태를 쓰윽 살펴보았다. 문제를 다 풀고 엎드려 있는 애들도 있었고, 한 문제라도 더 풀려고 끙끙대는 친구들도 있었다. 다시 내 문제지로 눈을 돌리려는 순간, 앞자리 친구의 시험지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위쪽 문제를 풀고 있었는지 책상에 걸친 시험지의 아래쪽 문제의 답이 보였다. 강·감·찬.

 ‘헉… 내가 틀렸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 친구가 나보다 공부를 잘했기에 내가 아무리 자신 있어도 그의 답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을 고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 끝에 난 결정을 내렸다. ‘그래! 난 을지문덕이다’

 나는 나를 믿기로 했다. 또 친구의 시험지를 보고 답을 쓰는 것은 옳지 않은 일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종이 친 뒤 아이들에게 ‘그거 을지문덕 맞지?’하니 모두들 뒤집어졌다. 나는 당황하며 절망했다.

 그날 시험지를 받아 들고 집에 가 엄마에게 엄청 혼났다. 특히 이 문제는 집중 표적이었다. 어떻게 이성계도 모르냐며. 그 사건 뒤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이 문제만은 자신이 있었다. 조선의 건국자는 이·성·계다.

최희정(대학생·22·서울 성북구 돈암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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