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WTO체제 대응유감 정부부터 경쟁력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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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내년부터 세계무역기구(WTO)체제가 출범하게 됨으로써 세계경제는 국경없는 무한경쟁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경제질서의 변화는 우리나라에 국제규범에 맞는 경제체제와 제도의 조속한 정립을 촉구하고 있으며,이 과제를 어떻게수행하는가에 따라 한국경제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여타의 개도국과 중진국들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필자가 최근 우루과이라운드(UR)이후의 무역과경쟁정책에 관한 국제회의및 세미나등에 참가해 경험하고 관찰한 바로는 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전문적이며 적극적인 준비태세로 새로운 여건에 대응하고 있다.
예컨대 말레이시아는 새로운 경제질서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경쟁촉진법(공정거래법)을 준비하고 있다.
비록 우리나라가 몇가지 경제지표상으로 이들을 능가하고 있다고는 하나 금후 전개될 각종 국제협상과 국제협력의 장에서 이들을압도하고 지도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는 새로운 각오로 노력해야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경제규모와 제도발전면에서 선.
후진국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우리는 더 이상 개도국도 아니고그렇다고 아직 경제선진국도 아니다.
개도국은 우리에 대한 동류의식이 희박해지는 반면 소위 선진국으로부터는 여전히 정식회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냉정히 직관해야 한다.그러나 반대로 이것은 마치 중매를 잘 서면술이 석잔이고,잘못서면 뺨이 세대라는 속담과 같 이 우리에게 특수한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로선 금후 국제적 협상에 있어 큰 방향은 물론 세부사항에 이르기까지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협력하고 요구할 것인지,양대 집단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정리한 바탕위에 이러한 기본구상에 입각해 국제적 입지를 확보하면서 국내외 양면 에서의 대응책을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과거의 선형적 연장이 아니라 높은 차원으로의 도약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새로운 국제경제질서에 대응하는 제도적 정비가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정부부처는 물론 연구기관간 고식적인 업무영역의 배분과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에 미흡함이 없도록 해야한다.개방된 국제화시대에는 안과 밖이 따로 없으며 민간보다 정부의 경쟁력강화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협의의 산 업정책.경쟁정책.통상정책 등이 신속.정확.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통일된 맥락에서 조정.수립될 수 있도록 정부의 조직과 기능이 개편돼야 하며,특히 국내적인 요인에 집착해 국제적으로 전개되는 문제에 대한 국제적 안목을 넓히는 것을 소홀 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무역장벽이 실질적으로 없어지게 되면 남은 문제는 지구촌시장에서의 경쟁규범을 각국의 이해를 조정하면서 어떻게 정립하는가다.이것은 앞으로 경쟁라운드(CR)에서 다루어질 것이다.이 점에서 우리나라는 중진국으로서 공정거래법을 시행한 지 15년이되어 간다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과거의 UR에서와 달리 한편으로는 중진국.개도국및 구동구권 국가들의 챔피언으로,또 다른 한편으로는선진경제에 걸맞은 경쟁질서를 추구해온 나라로서 국제적인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우리의 경험과 역량을 제대로 응집시켜 발현한다면 금후 국제적 교섭 마당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경제질서 재편에 선도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도전해야 할 과제는 오히려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이다.최근 일본의 어느 법학교수는 UR이후의 경쟁정책의방향을 논하면서 현재 일본의 지도층이 변화하는 세계질서를 직시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와 행태의 개혁을 이 루지 못한다면 이는 후세에 대해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는데,필자의 생각에 이것은 우리나라에 더 적절하다고 본다.
이처럼 공정거래제도(경쟁정책)는 금후 국제적인 협상의 초점이되는 것은 물론 국내적으로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질서를 확립함으로써 경제정의를 확립하고 동시에 효율성 제고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강화해주는 첩경으로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창조적 개혁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정부는 언필칭 자유시장경제의 창달을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내세우면서도 여전히 경쟁정책에 대해 그 중요성에 걸맞은 대접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앞으로는 국내적으로 산업정책과 통상정책등을 경쟁질서의 시각에서 조정하고 국제적으로는 각국간 공정거래제도를 조화하는 역할을주도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직과 권한을 격상시키고 전문적 능력을 갖춘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모든 행 정조직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승진을 위한 잦은 순환보직의 인사제도는 국제화시대의 정부가 경쟁력을 갖추어 민간 경쟁력을 뒷받침하려면 당연히개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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