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쪽지] ‘방과 후 원어민 영어회화교실’ 현장 가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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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성내중학교에서 외국인 강사가 ‘방과 후 영어회화’ 수업을 하고 있다.

‘Mao Zedong(마오쩌둥)’.

 칠판에 적힌 주제가 다소 무거워보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Communist Party(공산당)’ ‘Revolution(혁명)’ 등 초등학생 수준에는 다소 어려운 시사적인 표현이 속속 등장했다. 원어민 지도교사가 “Explain to me in English(영어로 설명해주세요)”라고 외치자 답을 고민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다. 한 마디 두 마디 단어가 나오고 문장도 얼추 만들어졌다. 교사의 입에선 바로 “Perfect!”라는 칭찬이 터져 나왔다.

이런 모습은 흔히 보는 영어학원과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장소는 학원이 아니라 학교다.

 강동구청과 성내중학교는 공동으로 ‘방과 후 원어민 영어회화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총 360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성내중 박해안 전 교장이 학부모에게 부담이 되는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프로그램을 구청에 제안한 것이 시발점. 강동구도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1년간 지원을 결정, 7월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일반 어학원처럼 수준별 수업과 ‘소수정예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도 특징이지만, 한 달 수강료 3만원의 저렴한 비용이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이다. 강의는 일주일에 세 번, 월·수·금 또는 화·목·토로 50분씩 100% 영어로 진행된다. 한 달이면 총 600분간 영어에 노출되는 셈이다. 테스트를 통해 실력을 측정, 정원이 12명인 15개의 반으로 나누어 수준별 학습을 시키고 있다.

레벨은 알파벳부터 시작하는 ‘기초반’부터 영어로 에세이를 쓰고 문법을 포함, 지리·역사 등 인문 분야를 토론하는 ‘엘리트반’까지 다양하다. 특히 ‘엘리트반’은 외국에서 공부하다 돌아온 학생들도 있어 수준이 상당한 편이다. 앞으로 레벨을 20개까지 늘려 보다 양질의 교육 시스템을 제공할 예정이다.

학생 성적 관리도 철저하다. 출석· 과제· 시험 결과에 따라 시상도 하고 등반· 월반 등의 지침으로도 활용한다. 모든 커리큘럼의 교재·레벨·테스트는 덩컨 보들리 지도교사팀장의 책임하에 이루어지는데, 자체 교재를 많이 쓰는 일부 어학원과 달리 시중의 다양한 교재 중 문법·회화 등 분야별로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른다고 한다. 현재는 영어 교육으로 유명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출간한 교재를 쓰고 있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았다. 원어민과 처음 영어를 공부해본다는 김기현(10·한산초4)군은 “외국인의 제스처도 재미있고 퍼즐도, 테스트도 모두 즐겁다”며 “처음엔 긴가민가하게 들렸던 영어도 이제는 거의 알아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방과 후 원어민 영어교실’을 총괄하고 있는 성내중 김동남 교사는 “요즘 밤 9시 이전에 퇴근해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1회성 체험이 아닌 연계적인 영어학습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며 만족해했다.

강동구는 설문조사를 통해 지원 대상 학교 확대 여부를 조만간 결정할 예정이다. 많은 돈을 들인다고 꼭 성과가 있는 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여전히 사교육에 대한 기대와 부담을 버릴 수 없는 게 대다수 학부모의 심정이다. 성내중의 ‘원어민 영어회화교실’처럼 공공시설을 이용하면서 싸고도 질 높은 프로그램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최윤정 열공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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