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과거核 투명성 늦출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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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네바의 미국(美國)-북한(北韓)고위급 회담이 미국의 세계 핵(核)전략과 중간선거를 앞둔 클린턴 행정부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서둘러 진행되고 있다.미국-북한이 일괄타결에 접근하고 있다는 협상 결과들이 당초 그들 스스로 설정,한국( 韓國)과 합의했던 원칙에서 후퇴한 내용이라는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과 미국이 합의단계에 이르렀다는 내용중 특별히 우려되는 점은 특별사찰의 시기를 모호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점이다.지금까지 한미(韓美)양국이 추구해온 특별사찰은 북한이 요구하는 경수로(輕水爐)지원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명확히 사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특별사찰을 경수로 건설을 시작하고서도 3~5년까지 뒤로 미루고 미-북 연락사무소 교환등 북한의 요구를들어주겠다는 내용이다.게다가 플루토늄으로 재처리할 수 있는 핵연료봉을 제3국으로 반출하겠다던 미국의 주장도 꺾였다.현시점에서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동결할 수 있다면 이런 정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게 그들의 논리다.
특별사찰 시기를 늦추는 대신 원자로의 연료 재장전,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재처리시설의 해체등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논리다.그러나 이는 다만 미국이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만 추구,앞으로어떤 일이 전개될지 예측하지 않은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특별사찰을 5년 가까이 늦춘다는 것은 북한이 그만큼 과거 핵개발의 모호성을 유지해가며 국제사회를 농락할 여유를 준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플루토늄제조가 가능한 연료봉까지 가진 그들이그 5년동안 어떤 새로운 요구를 들고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뿐만 아니라 사찰지역의 핵물질들을 은폐하거나 은닉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한미간에 긴밀히 협의가 이루어진 가운데 타결에 접근한 것처럼 돼 있다.그러나 우리 입장이 반영된 흔적은 크게눈에 띄지 않는다.이런 상황에서 경수로 지원의 몫을 우리가 얼마나 맡아야 할지 근본적으로 재고(再考)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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