晩秋극장가 예술영화 붐-"귀주이야기""만무방"등 개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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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만추(晩秋)의 극장가는 지난 여름의 부수고 죽이는 액션영화 주도에서 반성하고 고민하며 갈망하는 「아트무비」로 자리를 바꿔가고 있다.지난 주 선뵌 『귀주이야기』를 시작으로 『내 책상 위의 천사』『여왕 마르고』『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화혼』『전함포템킨』『세인트 오브 뉴욕』『음식남녀』,그리고 한국영화 『만무방』이 다음달 중순까지 개봉될 예정이다.
이런 영화들은 몇달 혹은 몇년씩 창고에 묻혔다가 선뵈는,이른바 흥행작과의 경쟁을 피해 10,11월의 비수기에 도피성 개봉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아트무비관객의 증가에 힘입어 일부러이 때를 택해 개봉시기를 잡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때문에 영화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요즘이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특히 영화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재미는 계절의 운치와도 어울려 영화광들은 은근히 이 때를 기다린다. 이번 가을의 아트무비 서막은 『순수의 시대』가 열었다.영화의 분위기를 감안,가을까지 개봉을 늦추어 온 작품이다.지난 4주동안 소리없이 관객을 모으고 있는 이 영화는 마수걸이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에 자극받은 하명중영화사는 『패왕별희』를 이번 주에 재개봉하기로 했다.그래서 관객들은 중국의 세계적 여배우 공리의 면모를 순박하지만 나약하지 않은 아내이자 여성(귀주이야기),자기인생에 책임을 다하는 여화가(화혼), 남성의 항로를 결정하는 오만한 요부(패왕별희)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감상할수 있게 됐다.
인간의 이기심과 관료주의에 맞서는 순박한 여성의 의지를 목격한(귀주이야기)관객이라면 『내 책상 위의 천사』에서 다시 한번투명한 인간의 영혼과 그것이 발휘하는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과 『전함 포템킨』은 영화사(映畵史)적 작품이다.전자는 전후 뉴저먼시네마의 대표적 작가 라이너베르너 파스빈더의 특징이 집합돼 있으며,후자에는 20세기 초 영화의 고전이론을 닦은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몽타 주기법이 살아있다.82년 36세로 요절한 파스빈더는 마리아 브라운(한나시굴라扮)이라는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전후 독일사회의 이면을 파헤치고 있으며,에이젠슈타인은 전함수병들의 봉기를 통해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전파하고 있 다.그것은 사회주의의 기치라기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으로 다가온다.
이밖에 오늘날 대만의 물질적 풍요와 변화하는 사회상을 음식에빗대어 풍자한 이안감독의 『음식남녀』를 비롯하여 성욕.식육 등인간의 본능적 욕구과 이데올로기의 갈등까지 진지하게 캐묻는 한국영화 『만무방』등이 무언가 새로운 감동을 찾 는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李揆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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