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겐세일 앞둔 부동산 시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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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18면

부동산 시장에 분양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시장은 바닥을 기고, 찬바람 쌩쌩 부는 비수기인 데도 그렇다. 내년부터 민간택지에 짓는 주택에도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한 달 보름간 서울과 수도권에서 분양될 물량만 200개 단지 10만6000채에 이른다. 이 지역의 한 해 공급량이 30만 채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비정상적으로 많다.

분양가상한제는 건설교통부령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산정되는 가격 이하로 아파트를 공급해야 하는 제도다. 그동안은 정부가 조성하는 공공택지 아파트에만 적용돼 왔다.

일반 아파트는 물론 재개발·재건축, 주상복합도 이를 따라야 한다. 시장과 업계에선 상한제 실시 이후 분양가가 주변 아파트값의 80% 선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사로선 달갑잖은 소식이다. 게다가 서울시는 은평 뉴타운 분양가를 당초 예상보다 10% 낮게 책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사들은 상한제로 분양가가 떨어지기 전 최대한 팔아치우기 위해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물론 분양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심해진 자금난도 한몫을 한다. 이자 한 푼 안 나오는 땅을 붙잡고 있어봐야 소용이 없으니 분양이라도 시도해 보자는 건설사가 적지 않다.

소비자들이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공급이 넘치는데 수요는 빤하다. 게다가 바겐세일 광고까지 나와 있다. 이런 마당에 백화점에서 정가를 주고 물건을 살 사람은 없다. 연말까지 분양시장에선 ‘미분양’이란 꼬리표가 넘쳐날 것 같다.

기존 주택시장도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을 것 같다. 새 아파트 값이 떨어지면서 기존 아파트를 사려던 사람도 두고보자는 태도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뉴타운이나 경전철 등 개발 재료가 있는 곳들이 부분적으로 많이 올랐지만 시장 전체로는 잠잠하다.

주변 여건도 좋은 편이 못 된다. 미국 부동산은 서브프라임 위기가 심화하면서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 신용 경색과 소비 위축, 세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부쩍 커지고 있다. 얼어붙은 시장 상황과 종합부동산세 등 높아진 세금부담은 ‘사두면 오른다’며 달려들던 가수요를 싹 걷어냈다. 부동산 시장의 자금은 개발 예정지와 강남 오피스타운 등의 땅으로만 쏠리고 있다.

대선 이후 들어설 새 정부의 정책에 기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섣부른 희망일 가능성이 크다.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시장이 과열되면 이를 진정시키고, 침체하면 부양책을 내놓는 대증요법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 부양을 명목으로 대책을 내놓을 정도로 시장이 고꾸라진 것도 아니다. 주식시장의 오랜 격언인 ‘기다리는 것도 투자’라는 말이 이래저래 잘 들어맞을 곳이 요즘 부동산 시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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