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美 퍼스트레이디들의 역할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6호 05면

퍼스트레이디는 ‘선출된 권력’이 작동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대통령은 단순한 정책지도자를 넘어서 국가 통합의 중심이자 상징적 의식의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퍼스트레이디를 ‘임기가 있는 여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통령의 ‘정서’ 세심히 관리해야

영원한 미국인의 연인인 재클린 케네디(애칭 재키)는 이를 정확히 이해한 미국 최초의 ‘쿨(cool)한’ 퍼스트레이디였다. 그녀는 스타일에서 유럽의 귀족주의와 다른 미국식 품위를 창출해내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만족시켰다. 오늘날까지도 그녀는 미국 박물관들의 인기있는 패션 전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 세계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의 대표주자인 ‘섹스 앤 시티’의 주인공 캐리가 신은 마놀라 구두처럼 재키의 구찌 가방은 전설로 남아 있다.

그녀는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유창한 프랑스어와 해박한 프랑스 문화 지식으로 미국 대통령들의 영원한 골칫덩어리였던 드골 대통령을 정신적으로 무장해제시켰다. 프랑스인들은 그녀를 ‘여왕’이라고 칭송하며 재키의 의전 행사에 수천 명이 파파라치처럼 장사진을 치기도 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속으로는 불쾌했지만 자신을 “재클린 케네디의 동행”이라고 선언하며 정치적으로 재키의 매력을 활용했다.

탤런트 송혜교씨 스타일의 그녀가 미국 리버럴들의 연인이라면, 고두심씨 스타일인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부인 바버라 부시 여사는 보수주의자들의 어머니였다. 까다롭고 무미건조한 남편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보완했다. 그녀는 덕분에 퇴임 후에도 ABC 방송에서 어린이 동화를 들려주는 할머니 코너를 진행했다.

화사한 재키의 미소 뒤에 바람둥이 남편에 대한 분노와 우울증이 감추어져 있었듯 바버라의 따듯한 미소 뒤에는 냉철하고 공격적인 권력의지가 숨겨져 있었다. 바버라는 흑인 중범죄자를 이용한 저질 네거티브 정치광고의 전설인 ‘윌리호튼 광고’ 집행에까지 관여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참모들을 냉혹하게 제거했다.

그녀의 며느리인 로라 부시는 남편인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불화설에도 불구하고 마치 ‘보수주의의 재키’ 같은 미국적 품위의 이미지를 유지해 레임덕으로 만신창이가 된 남편의 최대 구원병이 되고 있다.

퍼스트레이디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는 대통령의 ‘정서’를 관리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절제력, 자기성찰 등 정서의 세심한 관리가 매우 중요한 자리다. 권력강박증으로 물러난 닉슨 대통령은 최악의 정서 상태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부인인 팻 닉슨은 남편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돼 긍정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심지어 닉슨은 사임 기자회견조차 아내와 한 마디 상의를 하지 않았다.

더 심각한 사례는 링컨 대통령의 부인이다. 그녀는 대통령의 정서 관리는커녕 심지어 칼을 휘두르며 링컨을 협박하는 등 요즘 같으면 가정폭력으로 구속될 정도였다.

반면 존슨 대통령의 부인인 버드 여사는 권력통제에 병적으로 집착한 남편의 정서를 관리하는 데 남다른 지혜를 발휘했다. 1964년 선거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한 존슨에게 그녀는 장장 9쪽의 편지를 써 남편의 투지를 회복시켰다. 존슨은 이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해 미국 민주당의 황금기를 열었다.

여성적 이슈인 ‘삶의 질’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과거 서민·노동자의 대변인이었던 엘리노 루스벨트는 오늘날 진보 정치인은 물론 여성 정치지도자들에게 모범으로 거론되고 있다. 비록 남편 루스벨트는 그녀의 비서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는 권력공간으로서의 퍼스트레이디 위치를 냉철하게 활용했고, 소아마비에 걸린 남편 대신에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까지 수행했다.

그녀를 너무도 흠모해 백악관에 ‘영매(靈媒)’를 불러 그녀의 영혼과 접속을 시도하기까지 한 힐러리는 ‘제2의 엘리노’를 넘어 지금 대통령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힐러리가 당선된다면 미국 역대 어느 퍼스트레이디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지닌 ‘퍼스트 젠틀맨(빌 클린턴)’이 탄생하게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