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이 때부터 스타까지 ‘메이드 인 포항’…박원재의 ‘축구 만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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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의 태양’이라는 말을 듣고 수줍은 듯 미소 짓는 박원재는 박지성(작은 사진)을 영락없이 닮아 있었다. 딱 3초만. [사진=김태성 기자]

 1996년.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의 홈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스틸야드 사이드라인 바깥 쪽에는 늘 한 소년이 앉아 있었다. 공이 라인을 벗어나면 소년은 잽싸게 공을 주워 왔다. 포항동초등학교 5학년이던 소년은 황선홍과 홍명보를 보며 스틸야드에 서는 꿈을 꿨다. 98년 포철중학교에 진학해서는 들것을 맡았다. 쓰러진 이동국을 싣고 나오면서 챔피언이 되는 꿈을 꿨다.

 그로부터 10년. ‘스틸야드의 볼키드’ 박원재(23)는 그 꿈을 다 이뤘고 ‘영일만의 태양’이 됐다.

11일 포항의 K-리그 우승이 확정된 뒤 파리아스 포항 감독은 “최우수선수(MVP)는 박원재”라고 단언했다. 그는 수원 삼성과의 플레이오프(1-0 승)에서 결승골을 넣어 팀을 챔피언결정전에 올려놓았다. 성남 일화와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선 선제골을 쏘아 올려 대승(3-1)의 물꼬를 텄다.

 ▶‘메이드 인 포항’ 박원재

 포항이 스타 한 명 없이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포항동초-포철중-포철공고로 이어지는 ‘유소년 시스템’ 덕분이라고들 한다. 박원재는 93년 문덕초 2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축구부가 해체되면서 포항동초로 전학했고, 오범석(요코하마)·황진성(포항)과 함께 포철중-포철공고를 거쳐 포항에 입단했다. 포항의 공문배 코치는 중학교 시절, 김병수 기술부장은 고교 시절 코치였다.

포철중과 포철공고는 시설과 지원이 좋아 외부에서도 많이 오고 싶어 한다. 박원재는 “오려는 애들이 많으니 잘 하는 애들이 많고, 그래서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메이드 인 포항’이 우수한 이유다.

 ▶‘FA 상한가’ 박원재

 정규시즌 때만 해도 박원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시즌 초반 입은 발목 부상의 여파 때문이었다. 6강 플레이오프 직후 파리아스 감독은 “앞으로 만날 울산·수원·성남 모두 미드필드 압박이 강한 팀이니 네가 측면에서 경기를 풀어가라”고 지시했다.

펄펄 뛰는 그를 상대 수비들은 막지 못했고, 포스트시즌의 사나이가 됐다. 올해로 입단 5년차.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다. 여러 팀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3초 박지성’ 박원재

 박원재를 만나는 사람들은 “와- 박지성하고 꼭 닮았네”로 시작해 “에이- 자세히 보니 아니네” 로 끝낸다. 그 시간이 3초가 걸린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 ‘3초 박지성’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파마를 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아이가 “박지성 아저씨, 사인해 주세요”라고 했다. 아이의 아빠는 “박지성은 영국에 있어. 그 사람 가짜야”라고 했다. 아이는 “속을 뻔했네”라며 가버렸다. 그는 아직 박지성을 만난 적이 없다. 박지성과 대표팀에서 뛰었던 오범석이 그랬다. “너랑 지성이 형이랑 똑같애.”

장혜수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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