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씨 모친상 대통령 조화 汎與 포용 신호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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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박태준(朴泰俊)前민자당최고위원이 모친상을 당해 귀국하게 되면서 그의 사법처리문제가 주목을 끌고 있다.이 문제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朴前최고위원간의 92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얽히고 설킨 앙금이 두터운데다 새정부 출범후 朴씨가 1년반 이상을외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해 정치권의 관심사로 떠오른지 오래다.
더구나 朴씨 문제는 지난해 사정(司正)태풍 속에서 정주영(鄭周永)前현대그룹명예회장,박철언(朴哲彦)前의원과 함께 金대통령에게「표적사정」이란 흠집을 남긴 사안이었다.鄭前회장의 선거법위반문제는 집행유예로 일단락된 셈이며 朴前의원은 지 난달 가석방된상태다.남은 것은 朴씨 처리 뿐이다.
金대통령은 7일오후 朴씨의 모친상 이야기를 전해듣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고 한다.즉각 상가에 조화를 보내고 조의를 표시하기도 했다.이는 단순히 인간적인 감정의 표시라고도 할 수 있지만朴씨에 대한 화해와 포용의 의미도 담고 있다.정 권출범 초기의서슬퍼런 태도와는 대조적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朴前최고위원의 처리방향에 대해『상을 치르고 난 뒤 검찰조사는 불가피하다』고 전제하고『그러나 법적 처리는 朴씨의 국가발전에 끼친 공헌도와 고령인 점을 감안해 결정될것』이라고 밝혔다.
金대통령이 조화를 보낸 의미를 새겨보면 방향이 보일 것이라는얘기도 덧붙였다.사실 朴씨의 귀국문제는 지난해 연말을 고비로 거의 풀려가고 있었다.그러다「한국논단」에 金대통령을 비난하는 투의 朴씨의 인터뷰가 실리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
朴씨가 현정권과 간접적 교신을 가진 것은 지난 9월초다.
朴씨는 11월말 여권 만기를 앞두고 주일(駐日)한국대사관에 연장 신청을 냈다.청와대측은 즉각 공노명(孔魯明)駐日대사를 朴씨에게 직접 보내 「안전 보장성」메시지를 전달했다는게 청와대의한 고위관계자의 얘기다.
또 일본을 방문하는 정치인중 朴前최고위원과 친분이 있는 사람을 통해 비슷한 내용을 전달했으며 포항제철의 인맥을 통해서도 청와대의 뜻을 전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에서는 오히려 朴씨가 귀국하지 않은 데 대해섭섭해 하고 있다.물론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효(孝)를 강조하는 金대통령이 朴前최고위원을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 결국 어머니의 임종도 못보게 만들었다』는 비난이 상당히 신경쓰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으로는 朴씨의 36억원의 뇌물수수 혐의를 놓고 구속하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다.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뇌물수수)과 횡령혐의로 기소중지된 혐의자를 불구속 처리하기에는 법적인 부담이 있다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청 와대가 朴씨를 구속 하지 않고「정치적 사면」을 얘기하는 것은 나름대로 방안을 마련해놓고 있다는 의미다.
朴씨에 대한 이러한 유화태도는 정치적으로 현정권이 구여권(舊與圈)을 포용하는 작업의 신호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이는 연말의 개각과도 맞물려 상당한 시사를 던져주는 대목이다.
김일성(金日成) 사망과 10년만의 경제적 활황등 호재(好材)에도 불구하고 金대통령의 인기가 하락하는 것을 현정권의 핵심부에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맥락에서 아직도 외국에서 들어오지 못하는 이원조(李源祚)前의원과 이용만(李龍萬)前재무장관 처리문제도 관심을 끄는 부분이다.모친상을 계기로 朴씨 문제를 순조롭게 풀어나간다면 이들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견해도 제 기되고 있다. 李前의원은 지난1월 귀국의사를 밝혔으나 현정권측이 정치적 잡음을 우려해 만류했다는 후문이 나왔었다.
그러나 청와대측은「대화합조치」「舊與圈과의 화해」등의 표현을 몹시 꺼린다.내막적으로 舊與圈에 대한 포용작업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표면화.공식화되는 것은 金대통령의 개혁이나「성역없는 사정」방침과 충돌을 일으켜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처리는 朴前최고위원의 경우처럼 정치적의미가 크지 않기 때문에 그때 그때의 사회분위기 등에 따라 사안별로 처리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金斗宇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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