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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할말은하자>27.언론 이제 달라져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인천 북구청의 엄청난 세무비리와 맞물려 지존파 사건이 터지고이어 택시 여승객 납치.피살사건에다 장교탈영사건마저 알려지면서이 사회의 혼란스러움에 모든 국민이 개탄과 허탈 속에 빠져 있다.사건 하나 하나를 볼때 뜻있는 국민이면 가 위『오호라,대한민국!』이라고 비통해 할 사건들이다.사회 지도계층과 스승.부모들은 깊은 자기성찰(自己省察)로 이 부끄러운 일에 대한 내탓을찾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어 재발을 막기 위한 작은 실천을 다짐할 때이다.
4천여만명의 국민이 좁은 국토에서 복잡한 사회생활을 영위하며그 중의 과반수정도가 6대도시에 밀집해 사는 나라에서는 이와 같이 있어서 안될 사건들이 발생하게 마련이다.이러한 사건의 보도를 접할 때마다 뜻있는 사람들은 언론(言論)의 과도한 보도경쟁(報道競爭)과 중도(中道)를 벗어난 보도경향에 식상함을 금하지 못한다.
평소 우리의 언론보도 가운데 특히 이른바 특종보도와 사회면을눈여겨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많다.그 이유는 대부분의 지면이비정상인(非正常人)에 의한 사회적 비리와 부조리,엽기적 사건과사기행각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말없는 다 수의 선행과 미담은 보도되지 않기 때문이다.언론이 사회적 공기(公器)라면 당연히 비례대표(比例代表)의 원칙에 따라 선행과 미담도 적절히 부각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인 소수집단에 의한 폭로성 보도의 전용물(轉用物)이 되는 것은 불공평하다.
특히 대형사건이 발생할 때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경향은 그 극에 달한다.신문.TV할 것 없이 모든 언론매체가 경쟁적으로 균형을 잃은 대서특필과 집중보도로 온 나라를 벌집쑤신 듯이 만드는 경향이 없지 않다.이 와중에서 급하게 마련된 사설과 전문가기고,좌담회 등이 난무한다.이 모든 일이 마감시간에 쫓기면서 이루어지는 과당경쟁이니 품질관리에 허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반면에 수많은 끔찍한 사건들에 관한 보도가 있은 후 단비와 같이사후관리하는 보도는 그 사례를 찾 아보기가 어렵다.
더욱 아쉬운 것은 필자의 소견으로는 분명히 정신질환자로 밖에는 달리 생각되지 않는 지존파가 자신들의 만행을 변명하기 위하여 사후적으로 늘어놓는 빈부격차의 병폐니,『야타族을 손보지 못해 한이 된다』는 헛소리를 언론이 그대로 보도하여 이 문제의 초점을 흐려놓았다는 점이다.이러한 보도자세는 생각있는 중산층은물론 그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지만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해 저축하는 말없는 불특정 다수인의 건전한 자세에 허탈감마저 갖게 할 수 있다.
사실상 4천여만명이 넘는 인구중 약 과반수가 넘는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에 밀집해 사는 이 사회에서 이번에 우리가 겪은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야기할 수 있는 개연성(蓋然性)은 항상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정신질환자(精神疾患者)의 수용시설이 크게 부족하고 범법자(犯法者)의 교정및 교화활동과 아울러 그 사후관리가 미흡한 상태에서는 정신질환자.우범자에 의한 흉악한 범행의 개연성은 더더욱 높아질 수 있다.
역학적인 통계에 의하면 정신질환자가 인구 1천명중 한 사람으로 추정되고 있어 근래에 우리가 겪은 말할 수 없는 불상사는 평소에 쉽게 할 수 있는 예방과 사후관리를 소홀히 한 데서 온대형 돌발사건이지 선량한 국민 대다수가 본질적( 本質的)으로 변질(變質)된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인천 비리와 관련하여 문민정부의 개혁의지(改革意志)가퇴색 또는 실종되었다고 질타하는 보도는 옳지 못하다.이러한 비리가 전에도 있었으나 밝혀진 바 없다면 지금 문민정부의 개혁의지가 있기 때문에 밝혀지는 것이지 지난날의 정부 라면 벌써 덮어두고 언론통제를 가했을 것이 분명하다.지존파의 검거도 치안당국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연약한 한 여인의 고발로 이루어졌다.이엄청난 사건에도 용감한 시민의 고발정신은 한 사람의 것으로 충분하였기 때문에 범법자의 수보다 적 은 것이지 시민정신이 강한많은 다수가 없어서가 아니다.
실로 이러한 말없는 다수의 국민,이러한 사건이 일어나면 언론에 의하여 질타당하는 불특정 다수,극소수의 돌출로 허탈한 같은처지의 다수야말로 세계적으로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땅의 경제.사회발전을 이룬 일꾼이다.흉악한 소수가 말없 는 다수라면 이 나라는 외국의 선망을 받는 사회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이러한 분명한 사실에 유의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언론이 국가발전의 도도한 흐름에서 그 중심(重心)을 잡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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