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고산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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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철훈(1959~) '고산족'부분

삽백 예순날을 피로 밥을 짓는
네팔 사람은 매일 아침
조약돌 같은 까만 똥을 눈다
먹는 것이 사막의 생태계와 같다
공동우물 옆 풀섶에 뒹구는 네팔의 똥은
그래서 은빛이다
단백질을 먹지 않아
육질이 나무껍질 같은
얼굴의 주름은 언제나 아이 같은 미소에 덮여
가을의 낙엽처럼 진다
키버르 밀밭의 여인들은
시집을 가도 처녀처럼 맑다 (중략)
평생을 하늘만 보고 살다보니
눈동자에도 하늘만 고인다
그들은 히말라야를 먹고
히말라야는 그들을 먹는다



네팔에서의 히말라야 트레킹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끝없이 펼쳐진 설산의 파노라마를 보며 하루 이틀 사흘 걷다보면 이곳이 생의 풍경인지, 생의 경계를 아득히 넘어선 풍경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시간들이 이어진다. 월급봉투, 카드빚, 중도금, 로또복권, 연체율, 신용불량자, 광우병에 걸린 소와 새들이 옮기는 독감…. 뒤엉겨 함께 살아야 할 이승의 시간들의 이름을 잠시 망각하며 걷는 사이 눈앞에서 한 네팔 소녀가 웃는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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