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불안해 못살겠다는 말 안들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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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금 우리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지존파의 끔찍한살인행각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부녀자를 여섯명이나 납치하고,그중 두명을 살해했다는 또 하나의 충격적 사건이 터졌다.
세금도둑사건은 끝도 없이 번지고 있고, 장교가 탈영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국민을 불안하게 하고,좌절감을 안겨주고,건강한 의욕을 잃어버리게 하는 일들 뿐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불안해서 못살겠다』는 소리는 높은데 이에 대한 효과적 대응방법이 아무데서도 나오지 않고 있는 점이다.지존파나 부녀자납치사건을 보면 더이상 경찰은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다.세금도둑사건을 보면 공무원을 믿고 의지 할 기분도 나지 않고,장교탈영을 보면 군(軍)기강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세상사는 법도,공권력도,공직자도 믿을 수 없게 만들고 정부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신뢰감을 갖기 어렵게 한다.이제 많은 사람들이 자기안보는 자기가 취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딸 가진 부모나 새벽.심야 출퇴근자들은 그야말로 「특 단의 자기안보」에 골몰하고 있다.잠재적 지존파,안들키고 있는 납치행각등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하면 누구나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한 세상이다.
치안.법질서.공직기강등은 한 사회가 유지되는 최소한의 기본이다.정부가 존재하는 최소한의 이유도 여기에 있다.그러나 지금 우리사회는 이런 최소한의 기본이 무너지려 하는 것이다.뭔가 좀더 근본적인 방안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될 막바지까 지 온 것 같다. 정부에 묻고 싶다.경찰력이 부족한가.그렇다면 필요한만큼증원하자.수사비등 예산이 부족한가.그렇다면 국민에게 실정을 호소하고 필요한만큼 더 거두든가 다른 예산을 전용(轉用)하자.
정부가 이런 상황을 놓고도 아무 말이 없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불안하고,어수선하고,국민의 사기를 꺾는 이런 상황을 빨리탈피하고 분위기를 쇄신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우리가 보기에 정부자체부터 기합이 빠져있고 상황대처에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같다.대통령주재로 침통한 고위대책회의라도 열어 치안능력.법질서유지.공직기강확립 방안등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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