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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면 당신이 바로 ‘반지의 제왕’ 주인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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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15면

10월의 뉴질랜드 남섬은 우리나라의 4월 날씨, 비가 자주 오고 햇볕이 나올락 말락 예측할 수 없다. 남반부의 알프스라 불리는 ‘서던알프스’ 산군 아래 자리 잡은 프란츠 조셉 빌리지도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안개마을에 가깝다. 양젖을 쏟아내는 듯 가늠할 수 없는 산안개가 마을과 산과 골짜기 모든 것을 뿌옇게 뒤덮는다.

뉴질랜드 프란츠 조셉 빙하 트레킹

현지에서 트레킹 상품을 구매하면 곡괭이를 든 경험 많은 가이드가 빙하 사이로 길을 내가면 트레킹을 돕는다.

프란츠 조셉 빌리지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자원을 갖고 있는 마을치고는 소박한 편이다. 마을을 가르는 6번 국도변에 방문객센터가 있고, 길 양편으로 캠퍼밴과 렌터카가 몇 대 서 있을 뿐 단체여행객을 실은 전세버스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한창 눈이 퍼붓는 겨울에는 이 마을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고속국도가 차단될 정도라고 하니, 이른 봄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트레킹 에이전시 사무실에 들르니 하루에 두 번 있는 ‘워킹투어’ 상품이 모두 예약이 끝났다. 마을에서 빙하 트레킹이 시작되는 입구까지는 약 10㎞. 상품을 예약하지 않은 사람은 왕복 20뉴질랜드달러(1뉴질랜드달러=약 700원) 내는 셔틀버스를 타면 빙하 입구까지 갈 수 있다.

가끔씩 열리는 하늘 사이로 마운트쿡의 희끗한 정상부가 얼굴을 내민다. 해발고도 4000m가 채 안 되지만, 에드먼드 힐러리가 에베레스트를 처음 오르기 전 이곳에서 훈련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곳이다. 산과 산 사이 골짜기에 서 있는 또 하나의 얼음산이라고 할 수 있는 빙하는 지구 생성 과정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다에서 밀려온 습한 공기가 산에 부딪혀 눈 무더기를 이루고, 사면에 쌓인 눈 무더기는 골짜기로 쓸려 내리면서 얼음 계곡을 만든다. 봄이 되면 얼음 녹은 물은 대지를 적시며 다시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빙하로 접근하기까지는 너덜지대를 통과해야만 한다. 억겁의 빙하 무게에 짓눌린 골짜기의 바위들은 잘게 쪼개져 너덜지대를 이루는데, 이곳은 히말라야처럼 험난하지 않고 비교적 평평하다. 무엇보다 빙하에서 흘러내린 우윳빛 계곡물과, 트레일(Trail) 양편에서 쏟아 붓고 있는 수채화 같은 폭포들이 자리 잡고 있어 영화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처럼 탐험에 나선 듯한 기분이다.

빙하 앞에 서면 누구나 한번쯤 자연의 위대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위대한 자연에 두 발을 딛는 과정에는 인간의 노동력이 투영돼 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트레킹 가이드들이 빙하 표면을 곡괭이로 파헤쳐 걸음걸음마다 얼음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얼음계단도 아이젠 없이는 쉽사리 오르지 못한다. 봄이 되면 빙하가 녹기 시작해 얼음 표면이 질퍽해지는데, 등산화와 아이젠, 고어 재킷이 없으면 낭패를 보게 된다.

트레킹 중에 만난 말레이시아 출신 가이드 라만은 “가이드 없이 빙하를 오르는 일은 위험하다”며 혼자 걷는 기자를 보고 미간을 찌푸린다. 단체 상품이 안전하기는 하지만, 줄지어 빙하를 오르는 것보다 느긋하게 빙하를 감상하고 싶다면 혼자도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초입에서 만난 빙하는 먼지와 모래가루가 쌓여 칙칙한 빛깔이다. 더구나 햇볕을 받지 못한 빙하는 눈 무더기에 불과하다. 쉬엄쉬엄 30분쯤 올라가면 전망이 탁 트이면서 거대한 빙하 위에 두 발을 내딛게 된다. 이때부터 위대한 자연 속에 들어와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날이 선 얼음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고, 도랑처럼 푹 파인 빙하 계곡의 심층부는 푸른 빛을 띠는 청빙(靑氷)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밀도가 단단한 청빙은 뾰족한 피켈로 찍어도 잘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고 한다. 또한 크레바스(빙하에 생기는 균열)와 크레바스 사이로 자연스러운 얼음 동굴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런 곳에 몸을 숨기고 있으면 태 속에 들어와 앉은 것처럼 차분해진다. 배고픔도 잊고, 한참 동안 빙하를 음미하고 싶어진다. 트레킹 수준이라면 빙하에서 머무르는 시간은 2~3시간이 적당하다. 적절한 운동량과 함께 태초의 자연을 몸소 느끼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뉴질랜드 남섬은 캠퍼밴(www.campervan.com)을 이용해 여행하면 편리하다. 프란츠 조셉 빌리지에 가면 언제든지 트레킹 프로그램(www.franzjosefglacier.com)에 참여할 수 있다.

프란츠 조셉빙하를 즐기는 방법

Walking Tour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투어다. 프란츠 조셉 빌리지에 있는 트레킹 에이전시에서 다양한 종류의 트레킹 상품을 팔고 있으며, 한나절 투어, 2/3일 투어, 1일 투어가 있다. 사무실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빙하까지 이동한 후 트레킹 전문가이드가 선두에서 곡괭이를 들고 길을 개척하면서 빙하 위를 걷는다. 초코바 등이 제공되지만, 따로 간식을 준비해가는 게 좋다. 투어 비용 60$(NZ), www.franzjosefglacier.com

4륜바이크 탐험
2인승 4륜바이크를 타고 빙하 지대를 질주하는 어드벤처 프로그램이다. 거대한 빙하의 속살에서 내려오는 우윳빛 빙하 진흙탕, 너덜지대를 지나게 된다. 투어비용(2인) 180$(NZ)~, www.acrosscountryguadbikes.com

헬리투어
서던알프스 지역의 프란츠 조셉 빙하와 폭스빙하, 마운트쿡을 발 아래에 두고 조망할 수 있다. ‘에어사파리’라고도 하는 특별한 경험이다. 헬리투어는 날씨가 화창한 날만 가능해, 일기변화가 심한 빙하 지대에서 이런 여행을 해보는 것도 행운에 속한다. 투어비용 200$~, www.glacierhelicopters.com

뉴질랜드 남섬 캠퍼밴 일주
뉴질랜드를 여행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캠퍼밴(Campervan)을 빌려 섬을 일주하는 것은 그중 가장 매력적인 방법일 것이다. 실제로 남섬의 시골길에서 만나는 차 중, 둘에 하나는 캠퍼밴일 정도로 뉴질랜드는 캠핑카의 천국이다. 프란츠 조셉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부 해안을 관통하는 8번 국도를 타야 하는데, 이 길은 시종일관 신비에 싸여 있다. 태즈먼해(海)에서 불어오는 연중 습한 기후가 빽빽한 밀림을 형성해 운전 도중 차에서 내리기가 겁날 정도로 음산한 분위기다. 캠퍼밴 대여료는 1일 60$~200$(NZ) 정도다. www.camperv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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