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책읽기] 철학자 선생님, 뜬구름 좀 그만 잡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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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프랑수아 갈리셰-철학박사이고 알사스 사범대학 명예교수로 ‘학교에서의 철학’을 주도한 선구자 중 한 명이다. 철학이 전문가에게는 비판적인 사고를 함양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실천적인 면에서는 시민정신을 함양시키는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다. 『학교에서의 철학교육』, 『학교, 시민정신을 배우는 곳』 등을 썼다.

La philosophie à l'école
(학교에서의 철학)
프랑수아 갈리셰(François Galichet) 지음
Milan사,
192쪽, 15유로

나는 태어나기 전에 어디에 있었을까? 왜 학교에 다녀야 할까? 왜 우리는 꿈을 꿀까?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이런 의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우리는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의문을 갖는다. 철학(philosophy)의 어원은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이런 점에서 어린아이는 모두가 철학자다. 또 철학은 삶을 살아가는 지혜다. 하지만 철학이 일상적 삶에서 멀어져 버렸다. 요즘 철학이라 하면 뭔가 대단하고 고매한 사상이 돼버렸다.

올해 프랑스에서는 『고슴도치의 우아함』이라는 철학적 소설이 해리 포터 시리즈를 제치고 30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지금까지 60만부 이상 팔렸다. 이 소설의 저자 뮈리엘 바르베리는 철학 교사였다. 그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철학이 생활과 맞닿아 있지 않아 불만스러웠다고 말했다.

프랑스 철학계는 이런 점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반성했던 것일까? 10년여 전부터 생활에서 철학을 끌어내는 교육법을 개발해 학교 현장에 적용했고, 학생들에게 철학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 교육법을 개발하는 데 앞장 섰던 프랑수아 갈리셰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겪었던 일들을 정리해서 『학교에서의 철학』으로 발표했다.

하인즈의 아내가 어떤 특별한 암에 걸렸다. 때마침 동네 약사가 라듐을 재료로 그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런데 약사는 재료값보다 10배나 비싸게 약을 팔았다. 라듐 값은 200유로에 불과했지만 약값은 2000유로였다. 하인즈는 친구들을 찾아 다니며 돈을 빌렸다. 그러나 약값의 절반인 1000유로밖에 빌리지 못했다. 그래도 하인즈는 약사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약값을 깎아주든지, 나머지 약값은 나중에라도 갚겠다며 약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약사는 “내가 이 약을 발견했고, 이 약으로 돈을 벌어야겠소!”라며 하인즈의 부탁을 거절했다. 하인즈는 절망해서 진열장을 깨고 약을 훔치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 대입 논술시험에 이런 우화를 제시됐다면 십중팔구 법이 우선이냐, 생명의 우선이냐를 묻고 그 근거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라 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관점에서 토론을 끌어가면 법이 항상 정의로운 것은 아니며,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결정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자연스레 터득해갈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 특히 어린 학생들은 다른 눈으로 접근한다. 어른은 서구 기독교 사상에 물들어 결론에 집착한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하지만 말뿐이다. 위의 우화에서도 법과 생명 중 어느 것이 우선이냐는 질문 자체가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단적인 증거다.

하지만 학생들은 위의 우화에서 뜻밖의 질문을 던진다. 라듐은 방사성을 띤 물질인데 어떻게 약이 되는가? 라듐이 약이라면서 원자력 발전소를 반대하는 이유는 뭔가? 또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약값을 10배나 받는가?

철학자에게는 무의미하고 터무니 없는 질문일 수 있다. 하지만 상아탑에 갇혀 아리송한 말로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철학’을 학생들은 거부한다. 학생들은 뭐든 명쾌하게 알고 싶어한다. 철학이 무엇인가? ‘알고 싶은 욕구’다. 이런 점에서 학생들은 철학자들에게 사물을 다른 눈에서 보라고 요구하며 철학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요구한다.

강주헌<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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