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硏 산업정책 토론회-주제발표 정구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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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세계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한국경제가 이만큼 버티면서 성장을 하는 것은 자동차.반도체.조선.철강등 몇개의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고 견실한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잘 나가고 있는 철강이나 조선이 앞으로 30년후에도 한국경제를 지탱해줄 기간산업의 역할을 할 것인가.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같은 산업분야에 전문화돼 있는 기업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같은 문제들을 다루는 산업정책을 논의하면서 두 가지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기업이란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점이다.
기업은 20~30년후를 바라보고 지금부터 선투자(先投資)를 해야 한다.어려운 여건과 제한된 자원을 극복하고 새 기업을 일으키는 기업가의 역할이 자본주의의 장점인 역동성(力動性)의 근원이다. 이런 생명체가 자연스럽게 뻗어나가게 내버려둬야지 팔다리를 묶고 못뛰게 한다면 결국 20~30년후의 한국경제를 지금부터 속박하는 꼴이 된다.
또 하나 명심할 점은 기업경쟁이 국내로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는 경제의 무대가 세계 전체이므로 국내 시장만 보고 경제력 집중이나 독점을 따지는 것은 분석의 영역을 잘못 정하는 것이다.
지금 세계시장에서는 초(超)대규모 기업마저도 더 큰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인수.합병을 강행하고 있다.자동차.반도체.신발류.사진필름.음료등의 시장에서는 10개 이내의 초대규모기업이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국가 단위의 시장」을 중심으로 기업을 규제하는 것은 마치 2차선 국도에서의 속도제한규정을 8차선 고속도로에 적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많은 중소기업으로 국제경쟁에 대처하겠다는 것인가.
정부나 학계가 기업을 보는 눈도 크게 바뀌어야 한다.특히 경제관료들은 아직도 70년대식 분석 틀을 갖고 대기업을 규제하려하고 있다.
2년후면 한국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다는데 과연 선진국 중 어느 정부가 기업의 신규사업 진입을 막고 있는가. 정부가 무슨 이론적 논리와 법적 근거에 의해 철강.석유화학.자동차등에 대한 신규 진입을 막을 수 있는가.
정부는 산업정책.대기업정책이라는 개념부터 없애야 한다.
국제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기업의 최대 과제며,이를 가능하게하려면 정부는 경쟁촉진을 최대의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정부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가야 한다.
첫째,사업 다각화에 대한 규제는 기업에 시한부 생명을 강요하는 것이므로 전문화 유도정책을 모두 없애야 한다.정부가 다각화를 규제할 논리적.법적 근거는 희박하다.
둘째,소유구조에 대한 기존관념을 버려야 한다.
대기업의 대주주지분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고 상호출자도 줄어들고 있다.5대 기업집단의 경우 이제 가족경영이라기보다 대리경영체제에 돌입해 있고 멀지 않아 전문경영체제로 넘어갈 수 밖에없다.지금은 전문경영체제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 치의 연구가 더 필요한 때다.
셋째,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정부와 기업간의 건전한 분업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교통.환경.교육.복지.사회간접자본등 삶의 질을 높이는쪽에 주력하고, 기업은 국제경쟁력을 키워 고용을 늘리며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컨대 가장 좋은 산업정책은 기업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정책인 것이다.
[정리=南潤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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