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당 의원들 전자투표 아닌 기명투표 요구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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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항하던 FTA 비준동의안 처리는 9일 오후 9시를 고비로 기우뚱거렸다.

찬반토론이 끝나고 투표 방식을 정하는 표결을 하면서다. 먼저 무기명투표 안을 표결에 부쳤다. 결과는 찬성 89명, 반대 1백16명. 朴의장은 풀 죽은 목소리로 "부결됐다"고 선포했다. 뒤이은 표결에서 기명투표 안은 찬성 1백25명, 반대 83명으로 가결됐다.

기명투표를 줄곧 주장한 농촌 의원들은 환호했다. 실명이 드러나는 기명투표는 농민단체 등의 낙선운동 가능성 때문에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지는 데 부담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무기명투표는 지역구민들을 의식하지 않고 소신껏 투표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찬성파 의원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투표 방식을 정하는 일종의 예비투표에서 무기명투표가 부결됨에 따라 FTA 비준동의안의 부결 가능성도 자연히 커졌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朴의장이 국회법 제122조 제2항을 들어 투표용지를 이용한 기명투표를 선언했다. 찬성.반대자가 본회의장 전광판에 확연히 나타나는 전자투표를 예상했던 농촌 의원들은 벌떼처럼 일어났다. 朴의장은 "투표 결과를 예측하고 하는 게 아니라 국회법에 따라 국회를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농촌 의원들은 "꼼수"(송광호 의원)라며 반발했지만 朴의장은 정회를 선포했고, 본회의 산회로 이어졌다. 국회 관계자는 "농촌 의원들이 전자투표를 요구했어야 하는데 국회법을 잘 몰라 기명투표를 요구하는 바람에 오히려 제 발목을 잡았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이날의 논란은 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첩첩산중임을 또 한번 보여줬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각 당 지도부의 느슨한 표 단속에다 표를 의식한 의원들의 눈치보기로 이러다간 총선 후에나 비준안이 처리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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