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많이 먹었지만 이를 딛고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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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8일 대선 출마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 월계동 주공1단지 아파트를 방문해 할머니와 함께 사는 초등학생의 손을 잡고 있다. [사진=강정현 기자]

무소속 후보의 힘은 여론이다. 여론의 동향에 따라 힘을 받기도 하고 못 받기도 한다. 정당이란 울타리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7일 출마 선언 뒤 집중적인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정계 은퇴 번복' '대선 불출마 번복' '민주주의 원칙 위배' 와 같은 이유에서다. 두 번 대선에 출마한 '정치인 이회창'으로서는 그간 경험해 보지 못한 여론 환경이다.

8일에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이 후보의 출마를 두고 '노욕(老慾)'이라고 비판했다. "이회창씨와 내통하는 인사가 (당내) 있다면 해당 행위자로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했다.

이회창 후보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는 이날 여론 동향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측근들은 주장했다. 다만 강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만 "강 대표도 괴로웠을 거요"라고 한마디 했다는 것이다.

강 대표가 마음에 없는 비판을 했다고 간주한 것이다. 이 후보는 그러나 이날 월계동 소년가장의 집과 중계동 중증장애인의 집을 찾았을 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나도 어릴 때 어려운 시절을 겪어봤지만 어려운 시절이 있으면 나중에 삶에 대해 강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생긴다."(월계동)

"나랏일이 걱정돼 정치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고 욕을 많이 먹었다. 이를 딛고 나왔다. 정치를 하는 마음가짐을 다시 잡아야 하는데 어려운 곳에 계시는 분 뵙고 다지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모쪼록 마음속으로 파이팅해 달라."(중계동)

그는 기자들과 만나 정치 현안을 두고 간단한 문답을 나눴다.

-구체적인 공약이 없다.

"앞으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선대위 구성은.

"다른 정당처럼 사람이나 기구를 만들 생각은 없다.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사람과 같이할 것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와의 연대에 대해서는.

"앞으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후보의 측근들은 강 대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흥주 특보는 "강 대표가 이 후보를 모르는 분도 아니고 대권 병에 걸린 분이 아니라는 건 아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건 좀 심한 얘기"라며 "상궤에 벗어나고 저속한 말에 대해서는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대언론 분야를 담당할 이영덕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이 후보는 좌파 정권 종식이란 역사적 대의를 위해 은퇴 번복 등 소절(小節.작은 절조)을 지키지 못하고 나온 것"이라며 "정치세계의 언어가 너무 심하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 캠프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율 상승세에 고무돼 있다. 이흥주 특보는 "출마 선언을 하면 (지지율이) 빠질 것이란 의견이 있는데 결과는 그렇게 안 나왔다"며 "이 후보의 구국의 결단을 인식한 국민의 마음이 표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앞으로 서민층에 다가가는 행보를 계속할 예정이다.

이흥주 특보는 "이 후보가 아주 열심히 서민을 다뤘는데 (사람들은) 귀족이라고 한다"며 "잘못된 이미지다. 국민에게 진정한 이회창의 모습을 투영시켜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정애.이종찬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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