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청계천 상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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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청계천(淸溪川)을 노래한 대표적 시로는 원로 박재륜(朴載崙)시인의 작품과 중견 한광구(韓光九)시인의 연작(連作)이 꼽힌다. 『청계천 물은 썩고 냄새 피워도/그 소리는 맑고 옥(玉)을굴린다… 청계천 물은 검고 둔(鈍)하게 흘러도/별빛을 잠재우는고요한 저녁이 있다.』 『맞아죽은 살모사 한마리가 길가에 버려져 있었다./개미떼가 까맣게 모여들어/살모사보다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땡볕./뜨거운 모래,자갈./나는 혼자서 무서웠다.』 앞의 것이 1910년대 태생인 朴시인의 작품이고,뒤의 것이 40년대 태생인 韓시인의 작품이다.똑같이 청계천의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앞의 작품이 청계천의 혼탁한 흐름속에 모든 위선과 기만을 배설해 버리려는 희망을 술회 하는 반면 뒤의 작품은 썩을대로 썩어 도무지 회생(回生)의 가능성이 없는 청계천의 모습을 드러낸다.朴시인의 작품이 복개(覆蓋)이전의 것이고 韓시인의 작품이 복개 이후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조선조(朝鮮朝)태종(太宗)때 개거(開渠.위를 덮지 않고 그대로 터놓은 水路)공사를 시작한 이래 청계천에는 24개의 다리가놓이고 연날리기와 답교(踏橋)놀이가 벌어지는등 풍류와 세시풍속의 현장구실을 해왔다.급속도로 발전해 가는 서울 의 교통문제를다소나마 해소하기 위해 58년 복개를 시작해 61년 완공한 것이 오늘의 청계천이다.본래 자연하천 그대로여서 토사(土砂)의 퇴적이 심하고 양안(兩岸)민가에서 흘러나오는 하수로 매우 불결했지만 복개로 그것이 해소된 대신 청계천은 또다른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무질서와 소음공해,그리고 온갖 불법과 쓰레기가 이일대의 지배문화로 등장한 것이다.인간의 삶에 필요한 물건이라면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만물상의 구실을 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모든 범행에 사용되는 도구들마저 주로 이곳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날 청계천의 실상을 한마디로 대변한다.
「지존파」일당도 범행도구와 백화점 고객명단을 청계천 모처에서 구입했다고 진술했다.『월간중앙』이 지난달호 특집에서 청계천을「엉터리 화장을 한 정신나간 여인의 모습」이라 표현했거니와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키기는 커녕 악(惡)의 온상(溫床)이 돼가는청계천을 과연 어찌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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