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식어가는 미군환영 열기-아이티 현지르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미군 진주 이틀째를 맞이한 20일 아이티의 표정이 무기력하기는 이전이나 달라진 것이 없어보인다.
아이티에 지난 19일에 처음 투입된 미군 1진 1천여명은 공항과 美대사관 경비외에 군부 잔존세력들에 대한 테러등 폭동발생등을 감안,치안유지를 위해 빈민들이 몰려사는 시내 동쪽의 「시티 솔레이」지역에 배치돼 있는 정도다.
현지방송과 신문은 군부지도자 세드라측이 권력이양에 협조적이어서 모든 상황이 예정대로 전개돼 나가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상점이나 관공서.은행들이 대부분 정상업무를 하고 있다.미군이땅을 밟기 시작한지 이틀째이건만 아직까지 시내중심부에서는 미군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가끔씩 美해병들이 분승한 스리쿼터가3~4대씩 한산한 거리를 질주하고 있을 뿐이다 .
미군이 아이티에 상륙한 지난 19일 갯벌 흙과 온갖 쓰레기가뒤섞여 시궁창과 다름없는 포르토프랭스항 제1부두 앞길은 오전10시가 지나서부터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외항 수평선 너머에 배치돼 있던 미군함정들은 속속 부두로 진입해 병력과 중장비들을 쏟아놓았다.「해방군」의 진입을 지켜보려는 군중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다.하나같이 찌들고 여윈 군중들은 끊임없이 노래와 구호를 외쳐댔다.『세드라 고』 (세드라 퇴진),『데모크라시 예스』(민주주의를 원한다),『아리스티드 노』(아리스티드는 원치않는다),『선거 선거 선거』등 3년여의 피맺힌 한을 토해냈다.
이들 1만여명은 숨막힐 듯한 땡볕속에서 무리지어 거리를 누비며 신들린듯 흔들고 소리쳤다.
M16을 휘두르며 군중을 제지하려던 10여명의 아이티경찰들이물어뜯을듯 대항하는 이들의 기세에 눌려 뒤로 물러섰다.
중장비와 보급품을 매단 수십대의 미군헬기들이 폭풍과 같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올랐다.카터의 협상은 독재자 세드라가 미국의 압력에 무릎을 꿇은「사흘간의 드라마」였다.
네차례의 숨막히는 협상끝에 세드라의 하야와 미군의 무혈입성 소식이 18일 밤 전해졌다.
3년 가까이 끌어온 아이티사태가 타결됐음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세상이 「뒤집혀진」첫날인 19일 아침.선무방송에 나선 미군헬기들의 요란한 비행음이 아침정적을 깼다.
장갑차도,기관총좌도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기세등등하던 아이티 무장병력의 행적은 자취를 감추었다.시내외곽에 자리잡은 공항은 이미 선발대로 들어온 미군들에 의해 장악됐다.
새 세상을 맞이한지 이틀째.총기를 거머쥐고 경계의 눈을 번뜩이며 지나가는 외국인을 바라보는 아이티인들의 태도에는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그들에게는 미군이 점령군도,그렇다고 해방군도 아닌듯 싶다.미군 진주 첫날 보였던 열광도 보이지 않는다. 무표정과 체념어린 눈으로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
[포르토프랭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