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자이툰 부대 철수할 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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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자이툰 부대의 철군을 놓고 대선 정국과 맞물려 첨예한 논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논쟁의 기준은 과연 파병 목적을 얼마나 달성했는가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유엔의 도움으로 나라를 지켜 낸 한국은 이제 유엔 회원국으로서 전후 이라크의 신속한 평화 정착과 재건을 지원하고, 국제적 연대에 동참함으로써 세계 평화에 기여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 여기에다 이라크 정부의 지원 요청, 한·미 동맹, 기업 진출 여건 조성과 석유를 포함한 전략적 자원의 안정적 공급 등 여러 사항을 고려해 자이툰 부대를 이라크에 파병했다. 과연 파병의 목적은 달성됐는가.

우선 파병 목표 중 평화 재건 임무가 종료되었는가를 판단해 봐야 한다. 동맹군의 적대 세력에 대한 소탕 작전에도 불구하고 저항 세력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이란 등 주변 중동국가들은 이라크의 민주화 정착이 자국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면서 반미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이라크 내에서는 자치정부 수립과 이라크 치안군의 책임 지역이 확장됨에 따라 어느 정도 질서가 회복돼 가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14만 명 수준의 병력 일부를 단계적으로 감축할 예정이다. 그러나 향후 상당 규모의 병력을 상주시켜 민주주의 확산의 전초기지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석유 자원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할 것이다.

이라크 정국은 여전히 평화 재건이 완성되지 못한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이라크 동북부 지역에서도 자이툰 부대가 철수할 경우 그간 군사작전에 신중을 기하던 터키가 공격을 감행, 이라크 전 지역이 급격히 파국으로 치닫는다면 그동안 우리의 헌신과 수고가 무위로 끝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쿠르드 자치정부나 이라크 정부는 자이툰 부대의 주둔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철수 판단에 있어 고려할 둘째 요소는 한국 방어를 위해 주둔하고 있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다. 우리는 지난 3~4년 동안 한·미 동맹이 위태로워졌을 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한국군을 파병해 혈맹관계를 지속시켜 나감으로써 이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이라크에 파병을 했던 상당수의 국가가 철수를 했으므로 우리도 더 이상 주둔할 명분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3만 명 규모인 주한미군의 5분의 1 수준의 병력만이라도 이라크에 주둔시키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다. 특히 지금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미국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도 요청되는 시기다.

셋째 판단 요소는 기업 진출과 전략 자원 확보 측면이다. 자이툰 부대의 노력으로 인근 지역이 치안 질서를 회복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우리 기업의 진출 여건이 조성됐다. 그러나 우리가 안전에 지나치게 신중을 기하고 있을 때 그 열매를 중국과 터키 기업이 거둬 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지역의 석유 개발권 확보 가능성이 중국과 터키 쪽으로 기우는 것은 물론 벌써 이들의 대기업이 진출해 기업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자이툰 부대가 철수할 경우 우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된다.

또 하나 보다 많은 한국군 간부에게 자이툰 부대의 평화 재건 작전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두고 있는 우리 군에 독자적인 작전수행능력을 배양하는 귀중한 기회가 된다는 점이다. 올해 말까지 철수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동안의 투자 대 효과를 고려했을 때 너무 지나치게 명분에 집착하게 되면 더 실익을 잃게 된다.

우리는 유엔의 도움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었고,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으며,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가 됐다. 이제는 우리가 분쟁과 기근으로 고통 받고 있는 나라에 소망과 비전을 심어 주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게 우리가 국제사회에 진 빚을 일부나마 갚는 길이다.

정경영 가톨릭대 교수·안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