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에 고개 돌린 박근혜 "사과라 생각하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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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비서실장인 박재완 의원에게서 받은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이 적힌 쪽지를 읽고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꽁꽁 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마음이 좀처럼 녹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표는 5일 이재오 최고위원의 거듭된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와의 회동에 대해서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본관 본회의장 앞에서 30여 명의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기자들이 "이 최고위원의 사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사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호한 표정이었다. 그는 "사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연거푸 두 번이나 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날 사흘째 공개석상에서 "오만하게 비쳤음을 인정하고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와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는 "내가 처음 말한 상황에서 변한 것이 없는데 굳이 만날 필요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원들과 어렵게 살려낸 당이고, 내가 경선을 치르고 나서 정치발전을 위해 승복까지 했는데 당이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 측에 대한 불만을 직설화법으로 드러낸 것이다.

박 전 대표가 본회의장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 이 최고위원이 다가갔다. 이 최고위원은 악수를 청한 뒤 허리까지 고개를 숙여 박 전 대표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 최고위원에게 간단히 목례를 한 박 전 대표는 이내 그를 외면했다. 머쓱해진 이 최고위원은 뒤돌아서서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이 후보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도 본회의장에서 박 전 대표를 찾아갔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이 후보 측 얘기다.

◆"이 후보, 화합의 행동 보여야"=당내의 친박(親 박근혜) 의원 30여 명은 이날 김기춘 의원의 생일과 김무성 최고위원의 임명 축하 오찬 회동을 가졌다. 박 전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선 이 최고위원과 이방호 사무총장 등에 대한 강경 발언이 쏟아졌다. 박 전 대표의 오전 발언이 모임의 분위기를 끌어가는 역할을 했다.

▶김용갑 의원="이 후보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이 최고위원을 처리해야 한다."

▶유승민 의원="이 최고위원 사퇴는 화합을 위한 첫 부분이지, 완성이 아니다. 이것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은 위중한 상황이고 우리의 정치적 운명이 걸려 있다. 신중하게 상황을 지켜보자."

▶한 초선 의원="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에 이방호 사무총장의 '대선 잔금 수첩' 운운이 큰 역할을 했다. 이 총장도 사퇴 대상이다."

▶한 중진 의원="경선 이후 할 말이 태산처럼 많지만 가슴에 품고 깨끗이 승복했는데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탄압과 당에서 쫓아낸다는 말밖에 없었다."

모임 도중 "오늘 사과가 제대로 된 사과냐, 우롱하는 것이냐" "뭐하는 짓거리냐"라는 과격한 발언이 쏟아지기도 했다. 일부 의원은 김무성 최고위원에게 "박 전 대표 측 대리인 역할을 더 분명히 해달라"고 주문했다.

오찬은 1시간50분 동안 이어졌다. 한 참석자는 "이 최고위원의 사퇴는 기정 사실이므로 별도로 논의하지 않았다"며 "당의 위기 상황에서 이 후보가 진정성 있는 화합의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게 모임의 결론이었다"고 전했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nag.co.kr,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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