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52) 서울 양천갑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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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와 연수원이 팔릴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당장 국가에 헌납하고 국회로 들어가야죠.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수구 정당의 이미지가 화석(化石)화하기 전에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 줘야 합니다.”

서울 양천갑에서 재선을 노리는 한나라당 원희룡(40) 의원은 “‘차떼기’와 미진한 공천 개혁으로 한나라당이 정체성 위기를 넘어 지지기반 상실의 위기에 놓여 있다”며 “당사를 현물로 헌납하는 제도는 없지만 찾아 보면 방법이 없겠느냐”고 말했다.

“보수는 모름지기 깨끗해야 합니다. 도덕성이 시험대에 올랐는데 행동으로 보여 줘야죠. 집도 절도 없이 꾸려가면서 헝그리 정신을 보여 줘야 합니다. 한나라당으로선 이번 총선이 마지막 기회예요.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번영의 위기, 희망과 신뢰의 위기에 대안세력의 구심점이 되지 못하면 더 이상 존립하기 어렵습니다. 존립의 의의도 사라지구요.”

논란이 되고 있는 한나라당의 공천 물갈이에 대해선 폭보다 질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퀄리티가 높고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표상할 수 있는 인사들을 영입해 한나라당이 강세인 지역이나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 같은 당의, 같은 초선인 오세훈 의원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서는 아이러니를 느낀다고 말했다.

“남았으면 하는 사람은 나가고, 나갔으면 하는 사람은 남고…. 정치판을 떠난다니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혼자서만 홀가분해 지려고 그러나’ 하는 억하심정에 ‘그래,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원희룡 의원은 마라톤 마니아다. 풀 코스를 세 차례 완주했다. 사진은 2002년 경향신문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원 의원(오른쪽에서 셋째). 함께 찍은 동호회 사람들은 "우리 사회 각계 각층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생활인들"이라고 소개했다. 이들과 만나 땀 흘릴 때마다 그는 정치를 제 자리로 되돌려 놔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1년에 대해서는 사소한 성공과 중대한 실패들로 점철됐다고 비판했다. 이 정부를 지탱해 온 도덕 정치마저 대선자금의 덫에 걸려 효력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실정으로 빈곤이 심화됐고 미래의 불확실성이 커 졌다는 그는 재선을 겨냥하는 정치인으로서 국민통합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급변하는 세계 시장에서 통일과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나라 번영의 방법론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고픈 열정은 어느 후보 못지 않다고 털어 놓았다.

“국민들이 경제 의지를 상실한 것 같습니다. 더 잘살아 보겠다는 의욕을 잃은 것 같아요.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먹고 살기도 바쁘고…. 국민들에게 아이디어를 내라고 할 순 없죠. 국민들은 묵묵히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도록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데, 지금 그 견인차랄까 구심점이 없습니다. 어떻게 ‘다시 뛰는 대한민국’을 만들 건지 목하 고민 중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기업이고 교육이고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게 최우선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원 의원은 국회 정치개혁특위 선거법소위 간사를 맡고 있다. 그는 정치개혁의 핵심은 돈 안 드는 정치,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스스로 수입과 지출의 내역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원희룡 의원 홈페이지(http://www.happydragon.or.kr)의 재정보고 게시판. 수입과 지출 내역을 투명하게 밝히고 있다. 원 의원은 "정치권이 깨끗해 지려면 말뿐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 사례들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개특위 활동을 하면서도 기부행위, 합동·정당 연설회 등을 못하도록 해 돈 안 드는 정치와 돈 안 드는 선거를 만드는 데 힘썼습니다. 이를 어긴 의원은 궐석 재판으로도 의원직을 박탈하도록 했구요. 안타까운 건 돈 주는 정치인도 문제지만 유권자들도 돈을 바란다는 겁니다. 후보자의 정책과 비전만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그런 정치문화가 뿌리내리려면 정치권과 유권자들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 온 합리적인 개혁세력이라고 규정했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균형잡힌 정치인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주장했다.

“정치는 나라가 잘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정치인들은 정치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싸움에 골몰했고, 그 싸움이 존재 이유가 돼 버렸어요. 싸움 잘하는 사람이 정치를 잘하는 사람인 것처럼 돼 있습니다. 그럼 나는 과연 합목적적인 정치를 해 왔는지 자문해 봅니다. 돌아보면 있어야 할 곳에 있고, 할 말은 반드시 했습니다. 정치를 정치 본연의 자리로 돌려보내기 위해 해 온 노력을 냉철하게 평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필재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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