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야기] 버드나무 껍질서 추출한 세기의 명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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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온 지 100년이 더 지났는데도 지금도 용한 약으로 통하는 것이 있다. 감기·몸살·두통약이자 심장병 예방약인 아스피린(아세틸 살리실산)이다.

아스피린이란 이름은 주성분인 아세트산(acetic acid)의 a와 버드나무의 학명인 스피라이아(spiraea)의 합성어다. 버드나무 껍질 추출 성분으로 만든 약이다.

고대인은 버드나무 껍질 즙의 약효를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기술돼 있으며, 그리스의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는 해열·진통을 위해 사용했다. 바이엘사 연구원이던 펠릭스 호프만이 이를 화학적으로 합성해 ‘세기의 명약’ 아스피린을 탄생시킨 해는 1899년.

출시와 동시에 아스피린은 안전한 해열·진통·소염제로 인정받았다. 특히 20세기 초에 유행한 독감 증상을 해소하는 데 탁월한 효능을 보이면서 용한 약으로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아스피린이 감기·몸살에 잘 듣는 이유는 72년 후에야 밝혀졌다. 1971년 영국 웰컴 연구소 존 베인 박사가 밝혀낸 아스피린 약효의 비밀은 프로스타글란딘(통증·염증 유발)의 생합성을 억제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없는 약이 어디 있으랴?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김병성 교수는 “아스피린을 복용한 뒤 위장장애(속쓰림·위통 등)·위출혈·위궤양·십이지장궤양 등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며 “이런 사람은 아세트 아미노펜(타이레놀)을 복용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어린이에겐 부작용으로 간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여기에 바이러스가 개입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수두·독감(둘 다 바이러스가 병원체)에 걸린 어린이에게 아스피린 복용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다.

감기 환자는 아스피린과 비타민 C를 함께 복용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둘이 궁합이 맞지 않아서다. 둘 다 산(酸)이어서 함께 복용한 뒤 출혈이 있으면 피가 잘 멎지 않을 수 있다.

다양한 해열·진통제가 쏟아져 나오면서 아스피린의 화려한 시대도 저무는 듯했다. 그러나 새로운 용도가 밝혀지면서 기사회생했다.

78년 캐나다 연구팀은 아스피린이 “뇌졸중 위험을 31% 떨어뜨리고 관상동맥 질환으로 인한 발작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근거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1980년 아스피린을 ‘심혈관 질환 예방약’으로 승인했다.

둘 다 의사의 처방전 없이 구입 가능한 일반약이다. 그러나 용량·복용법·약 이름은 다르다. ‘해열·진통제’는 보통 500㎎ 짜리다. 통증·열이 있을 때 수시로 복용하기도 한다. 약명은 그냥 ‘아스피린’이다. 반면 ‘심혈관 질환 예방약’은 저용량인 100㎎(85∼325㎎ 짜리까지 나와 있다)이다. 하루 한 번(아무 때나) 먹는다. 약 이름도 ‘저용량 아스피린 ’‘아스피린 프로텍트’ ‘아스트릭스’ 등 새롭게 붙여졌다.

이제는 판매량에 있어서도 ‘심혈관 질환 예방약’이 압도적 우위를 점한다. 바이엘 헬스케어의 경우 지난해 총 아스피린 매출액 234억원 중에서 ‘예방약’의 매출이 220억원에 달했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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