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정복자’ 이세돌, 누가 막을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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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세돌’을 저지할 것인가. 24세, 전성기에 접어든 이세돌 9단이 본격적으로 정복자의 길에 들어섰다. 이세돌은 지난달 30일 강원도 사북의 강원랜드에서 벌어진 강원랜드배 명인전 결승에서 조한승 9단을 완파하고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서울로 돌아온 이세돌은 1일 윤준상 6단이 갖고 있는 ‘국수’ 타이틀에 도전, 첫판을 가볍게 승리했고 3일엔 GS칼텍스배 도전기를 두기 위해 중국 칭다오로 간다. 상대는 박영훈 9단. 이번엔 이세돌이 방어하는 입장이다. 이어서 12일엔 도쿄로 날아가 LG배 세계기왕전 8강전에서 일본 최강자 장쉬 9단과 맞서고 20일엔 유성의 삼성화재배 세계오픈 준결승에서 중국 최강자 구리 9단과 회심의 일전을 벌인다.

 도전하고 방어하며 우승컵을 늘려가는 이세돌의 발걸음에선 과거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이 그랬던 것처럼 ‘종횡무진’의 이미지와 함께 ‘무적’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오고 있다. 조한승 9단과의 명인전 결승전은 3대0 완승이었다.

이세돌 9단

이세돌 9단은 시상식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3대0으로 졌어도 할 말 없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단순히 겸손이 아니라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1국에선 완패로 끝나가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스스로 자멸했고 2국과 3국도 초반이 좋지않아 힘든 바둑이었다.

 그러나 이세돌은 어떻든 이겨낸다. 강원랜드에서 벌어진 3국에 대해 조훈현 9단은 “점심 때까지만 해도 백(조한승)이 은근히 두터워 보였는데 점심 직후 삽시간에 흑 필승의 바둑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집은 많지만 사방이 엷은 느낌이었는데 몇 수 바람같이 움직이더니 대 우세의 바둑을 만들어낸 것이다. “재주가 좋아요”라고 조훈현 9단은 혼잣말처럼 감탄하고 있었다.

 1일 벌어진 윤준상 6단과의 국수전 첫판은 이세돌이 불과 141수만에 화끈한 불계승을 거뒀다. 이세돌은 아직 국수전에서 우승해보지 못했다. 그는 “국수라는 칭호 때문에 꼭 한 번은 차지해보고 싶다” 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는데 이는 한국바둑의 대통을 이은 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 등이 모두 국수라는 칭호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일 것이다.

하나 정복자 이세돌의 앞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본인이 고백한대로 ‘포석’에서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과거 최전성기의 이창호 9단도 포석에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기술적인 약점은 탁월한 전투력과 임기응변으로 극복할 수 있다. 이세돌의 진정한 적은 ‘체력’이다. 그는 국수전이 끝난 다음날(2일) 칭다오로 떠나 3일 박영훈 9단과 GS칼텍스배 결승을 시작한다. 12일엔 도쿄(LG배 8강전), 20일엔 유성(삼성화재배 준결승)에서 빅 매치가 기다리고 있고 그 사이 사이에 제일화재 팀의 주장으로 한국리그에 나서야 하고 구이저우 팀의 주장으로 중국리그에도 나가야 한다. 한국리그는 2위, 중국리그는 1, 2위를 오가고 있어 막판으로 갈수록 이세돌의 임무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이런 영향 탓인지 얼마 전 한국리그에서 루이나이웨이 9단에게 질 때는 힘 한번 쓰지 못했다. 이세돌은 본인도 그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번 강원랜드에서의 명인전도 2대0으로 앞섰음에도 전과 달리 고삐를 바짝 조여 3대0으로 대회를 끝냈다. 본인도 체력에 대한 공포(?)를 어느 정도 느끼고 있기에 한 판이라도 줄이고자 전력을 기울인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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