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록’ 앞에 무릎 꿇은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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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기적도 관록 앞에선 무기력했다. 월드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4연패를 당한 콜로라도 로키스는 월드시리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며 기적 같던 행진도 종지부를 찍었다.

로키스는 정규 시즌 막판 17승1패를 올리며 단숨에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를 다투게 됐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단판 승부에서 연장전 끝에 디비전 시리즈 출전 자격을 따냈다. 1995년 이후 10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이었다. 가을 무대에서도 로키스의 폭주를 막을 브레이크는 없어 보였다.

역시 시즌 막판 연승 행진으로 디비전 시리즈에 오른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3연승으로 돌파했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에서는 전력상 한 수 위라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4연승으로 꺾고 93년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리그 챔피언이 되며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11연승 뒤 1패를 당했으나 다시 10연승의 파죽지세였다.

 하지만 너무 ‘잘나간’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 아메리칸리그에서 레드삭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펼치는 동안 일찌감치 월드시리즈행을 확정한 로키스는 무려 8일을 쉬었다. 챔피언십 시리즈를 4연승과 4승3패로 통과한 두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맞붙은 적은 두 번(88년, 2006년) 있었는데 모두 7차전을 거친 팀이 우승을 가져갔다. 이런 결과는 올해도 재현됐다. 쉬는 동안 활화산의 활동이 멈춘 것이다.

 로키스가 디비전과 챔피언십에서 상대했던 필리스와 다이아몬드백스는 최근 포스트시즌 경험이 많지 않았지만 레드삭스는 달랐다. 테리 프랑코나 레드삭스 감독은 3년 전 월드시리즈를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체득한 지도자다. 조시 베켓과 커트 실링이 1·2차전에서 로키스 타선을 완벽하게 틀어막았고, 다비드 오르티스, 마니 라미레스가 중심을 잡고 마이크 로웰이 휘저은 타선은 포스트시즌 한 경기 최다 2루타 신기록(8개·1차전)을 세울 만큼 폭발적이었다. 식어버린 로키스엔 너무나 벅찬 팀이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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