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서류도 대신 써줍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 포기한 법조인 꿈 봉사로 실현

≫ 가정 법률 상담사 자격증도 따

민원인들의 질문에 환하게 웃으며 답하는 서울지법 민원실 도우미 강선희씨.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 동관 민원실 서류작성대 앞. 작은 책상 앞에 몸집이 자그마한 할머니가 앉아 민원인들을 맞이한다. 이 할머니는 돋보기를 끼고 어떻게 법원 서류를 작성해야 할지 쩔쩔매는 민원인들에게 알기 쉽게 법률용어를 설명해 준다. 올해 고희(70세)인 강선희씨. 강씨는 7년 반 넘게 민원인들에게 법률 도우미를 하고 있는 시민 자원봉사자다. 이곳에서는 '법원 할머니'로 통한다.

강씨는 매일 오전 10시 법원에 출근해 오후 4시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지법, 고법, 대법원을 찾아오는 민원인들에게 민원서류를 떼거나 작성하는 안내에서부터 민.형사 및 가정법원 사건에 이르기까지 법률문제 상담과 설명을 해준다.

강씨가 제2의 인생으로 법률 도우미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강씨는 어려서부터 법조인, 특히 판사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법학과를 지원, 1961년 이화여대 법대를 졸업했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스물네 살의 나이로 결혼, 줄줄이 1남4녀를 두면서 법조인의 꿈을 접고 전업주부로 들어앉게 됐다. 지금까지 친손.외손까지 열두 명의 자녀를 길러냈다.

강씨의 제2인생은 62세 때인 2000년 3월 시작됐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강봉수 원장이 법대 출신의 민원봉사자를 모집할 때 지원을 한 것이다.

민원 요청은 이혼 신청.민사.형사 등 다양하다. 그래서 밤 1시 넘어까지 때늦은 공부를 하기도 한다. 봉사활동의 영역을 넓히자는 일념에서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사 자격증도 땄다.

강씨는 민원인 중 특히 장애인이나 노인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쓴다. 소장도 대신 써준다. 지난해 3월에는 한 사형수가 강씨의 기사를 봤다며 살려 달라는 편지를 보내와 한참 울었다고 했다.

신종수 객원기자

다시 뛰는 실버 ② 봉사하는 노년 #평생 받고 누린 것 이젠 갚고 삽니다 #서울지법 민원실 도우미 70세 강선희씨

▶[동영상] 법원도우미 vs 신인가수 [인생 제2막…다시날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