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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효과와 냄비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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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오마하의 현인(賢人)’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은 열한 살에 처음 주식을 샀다. 그의 아버지 하워드 버핏이 운영하던 주식중개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다. 그는 주당 38.5달러에 산 그 주식을 얼마 후 40달러에 팔았다. 그런데 그 주식은 몇 년 후 200달러까지 값이 치솟았다. 버핏은 그때 장기투자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깨달았다고 했다.

워런 버핏은 이른바 ‘가치투자’를 통해 거부(巨富)를 모은 것으로 유명하다. 가치투자란 기업의 내재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은 주식을 산 후 시장이 그 내재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렸다가 판다는 것. 한마디로 ‘헐값에 사서 제값을 받고 판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 같은 그의 투자기법이 돋보이는 이유는 많은 투자자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들은 주가가 조금만 올라도 서둘러 주식을 내다 판다. 작은 이익에 눈이 어두워 제값이 얼마인지도 따져보지 않고 혹시 주가가 떨어질까 안절부절못한다. 열한 살 버핏이 그랬던 것처럼.

물론 버핏이 기업의 내재가치를 알아보는 혜안은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버핏은 어린 시절부터 동네 도서관에서 투자와 관련된 책을 섭렵하면서 기업가치와 주식투자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떨어진 뒤 대신 들어간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선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으로부터 투자기법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버핏의 투자 원칙 가운데 하나는 자기가 잘 아는 기업의 주식에만 투자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증시를 뜨겁게 달궜던 인터넷 호황 시절에도 정보기술(IT) 관련 주식에는 일절 투자하지 않았다. IT를 잘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그 덕에 IT 거품이 꺼졌을 때에도 전혀 손해를 보지 않았다.

버핏의 성공을 본 사람들이 그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버핏이 어디에 투자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추격매수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버핏이 샀다고 알려진 주식은 자연히 오를 수밖에 없을 정도가 됐다. 이른바 버핏효과다.

그 워런 버핏이 지난주 한국을 다녀갔다. “한국 증시가 10년은 더 갈 것”이라는 그의 말 한마디에 코스피지수는 가볍게 2000선을 회복했다. 과연 버핏효과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정말 버핏처럼 성공하려면 내재가치를 꼼꼼히 따져보고 충분히 기다리는 끈기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주가의 일시 반등은 버핏효과가 아니라 냄비효과에 불과하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