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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20세기의 결정적 순간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3호 20면

“나는 그 다음 날 간디의 사진을 찍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주로 어떤 작업을 하는 사람인지 보여주기 위하여 간디에게 내 사진첩을 한 권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몇 분 후에 헤어졌다. 내가 밖으로 나갔을 때, 간디는 죽었다.”

여기 한 장의 흑백사진이 있다. 맨발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위대한 영혼(마하트마)’의 평화로운 외출이다. 간디는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첩을 넘겨 보다 어떤 사진들을 가리키며 “죽음, 죽음, 죽음”이라고 말했다. 브레송의 렌즈에 포착된 간디의 외출은, 예기치 않았던 그의 암살과 맞물려 20세기의 비극을 말없이 웅변한다.
침묵은 때로 어떤 달변보다 더 많은 걸 말한다.

보도 사진작가 그룹 ‘매그넘(Magnum)’의 작업이 그렇다. 1947년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가 브레송·조지 무어·데이비드 세이무어와 함께 설립한 ‘매그넘’은 ‘현장에 있음’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사선(死線)을 마다하지 않고 역사와 세기를 촬영했다.

베를린 장벽이 쌓였다가 무너졌고, 마릴린 먼로가 고혹적인 자태로 웃었으며, ‘베이징의 봄’에는 유혈이 낭자했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카메라는 현장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60여 명의 작가는 소리 없는 이미지로 지구촌의 희망ㆍ공포ㆍ매혹ㆍ슬픔을 증언하고 있다.

올해로 환갑을 맞은 ‘매그넘’이 추리고 추린 ‘20세기의 사진’ 300장을 한 권에 담았다. 카파의 자서전이나 브레송의 사진집이 나온 적은 있지만 ‘매그넘’의 이름으로 압축된 역사가 국내에 소개되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ㆍ영국ㆍ독일ㆍ프랑스 등 23개국 편집자가 지난 2년간 공동으로 기획해 동시 출간했다. 수만 장의 사본을 서로 돌려보고 대조하며 빠트려선 안 될 그때 그 순간을 골랐다. 한국 사진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의 거제도, 1952년’이 유일하게 수록됐다.

사진집이라기보다 차라리 시각문화 세대를 위한 현대세계사 책이다. 꼼꼼한 연표에다 시대를 압축하는 ‘말말말’을 곁들였다. 무엇보다 당시 현장을 찍었던 사진작가들의 생생한 회고가 압권이다. 제작비 여건상 국내에선 초판만 한정 판매된다. ‘매그넘’은 내년 5월께 한국의 사계절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기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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