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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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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베토벤에 푹 빠져 지낸 한 주였다. 신 내림 같고 운명 같은 한 주였다. 스스로를 어떻게 못한 한 주였다. 지난 주말, 서울음대 학장을 지내고 얼마 전 정년 퇴임한 피아니스트 신수정 교수의 작은 연주회에 초대받아 간 것이 그 촉발이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주관하는 이야기 콘서트 ‘마이 라이프, 마이 워크’ 무대에 정년 이후 두 번째로 선 신 교수의 그날 연주회 테마는 ‘위대한 베토벤’ 이었다. 신 교수는 그 누구보다도 베토벤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40여 년 전인 1960년대 중반의 빈 유학 시절 온통 베토벤에 빠져 살았던 때를 떠올리며 연주회를 이어갔다.

그녀는 그날 연주회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으로 마무리했다. 그녀의 안경 너머 감추어진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엘리제를 위하여’를 앙코르 곡으로 준비하긴 했지만 더 이상 연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만큼 베토벤 최후의 피아노 소나타 32번은 비록 2악장이지만 그의 위대한 삶이 농축돼 있었고 거기에 그녀 역시 흠뻑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날 ‘베토벤 바이러스’에 감염된 탓일까? 오랜만에 보게 된 영화도 ‘카핑 베토벤’이었다. 베토벤의 생애 마지막 교향곡인 9번 합창교향곡 발표를 나흘 앞둔 1824년 빈의 어느 날. 악성 베토벤의 악필 악보를 깔끔하게 오선지에 옮기는 작업을 한 여인이 맡게 됐다. 그녀의 이름은 안나 홀츠. 그녀가 정서해온 악보를 보던 베토벤은 처음 자기가 만든 악보와 다른 부분을 발견하고 왜 허락도 없이 바꿨느냐고 묻자, 안나 홀츠는 말했다. “바꾼 게 아니라 교정한 거예요. 가장 베토벤답게.” 이 한마디로 안나 홀츠는 베토벤의 눈에 들게 되었다.

마침내 합창교향곡이 완성되자 베토벤은 이 교향곡의 초연 지휘를 직접 맡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거의 청각을 상실해 버린 베토벤이 교향곡을 지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장님이 운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오케스트라 연주자들 사이에 꿇어앉아 자신을 향해 전하는 안나 홀츠의 손짓과 눈빛의 도움을 받아 놀랍게도 합창교향곡 초연을 위대한 성공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물론 베토벤은 연주가 끝난 후 터진 그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마저 듣지 못했다. 신은 베토벤의 온몸에 위대한 음악을 흘러넘칠 만큼 밀어 넣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 음악도 그것에 대한 찬사도 들을 수 없게 했던 것이다. 영화에서 9분 동안 계속된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초연 장면을 보고 정말이지 많이 울었다. 얼굴을 타고 내린 눈물이 목선을 거쳐 가슴을 적실 정도로….

베토벤 바이러스의 핵심은 감동이었다. 그 감동 속에 위대함이 녹아 있었다. 우리는 감동에 목말라 있다. 그래서 더더욱 감동을 원한다. 한때 서로를 감동시켜 결혼했지만 그 감동이 사라지고 서로의 가슴이 무덤이 되면 결국 이혼하게 되는 것이다. 비단 박철과 옥소리, 이영하와 선우은숙만이 아니다. 누구나 그렇다. 부자간에도 감동의 기억조차 없으면 결국 남보다 더 무섭게 된다.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을 둘러싼 강씨 부자의 모습이 그렇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국민 여러분, 성공하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런데 정작 이 후보가 성공하려면 국민을 감동시켜야 한다. 위대한 감동이 없으면 위대한 성공도 없다.

위대한 감동을 이루려면 베토벤처럼 해라. 감동은 기교의 산물이 아니다. 자신을 불살라야 나온다. 우리는 감동 주는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 상사와 부하를 원한다. 더 나아가 감동의 기업, 감동의 사회, 감동의 나라를 꿈꾼다. 그러려면 스스로를 불살라라. 위선과 가식이 아니라 자신의 열정과 몰입 그리고 헌신의 불길로 말이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