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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남편의 각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그래서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철칙이다.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따라 인품과 사람됨의 기준이정해지기도 한다.中國의 古典『三國志』에서 孔明의「泣斬馬謖」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을 응징한 좋은 예고,死刑을 당하게 된죄수가 친구를 인질로 맡겨놓고 마지막으로 老母를 찾아뵌 다음 촌각을 다투어 刑場으로 되돌아왔다는 우리 故事는 약속의 소중함을 교훈으로 일깨운다.
그러나 오늘날의 약속은 마치 깨뜨리기 위해 존재하는듯 사람들은 약속 어기기를 밥먹듯 한다.말만으로의 약속은 더 말할 것도없고,書面이나 錄音등의 근거를 남긴 경우에도 시침을 떼고 자신의 약속을 파기한다.
국가간의 약속에서 개인간의 약속에 이르기까지 지켜진 것보다 지켜지지 못한 것이 훨씬 많다.지켜지지 않는 약속의 대부분은 약속에 뒤따르는 의무조항이 없거나 경미한 경우다.
약속을 깨도 피해볼 일이 없으니 그만이지 않느냐는 식이다.
그래서 국가간의 약속인 覺書는 條約이나 협정과 같은 국제법상의 구속력을 갖고,개인이나 회사등 단체간의 각서는 民法上의 계약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약속의 파기는 신뢰를 전제로 해야할 국제사회나 한 국가의 기초질서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아내에게『중대한 과오를 저지르면 전재산을 위자료로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주고도 1년 가까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게 각서대로 이행하라고 한 가정법원의 판결은 인간사회에서 약속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한 조치로 보인다 .
그러나 이와 함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순종과 희생만 강요돼온 아내의 位相이 남편과 거의 대등한 입장으로 발돋움했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이번 경우 아마도 남편은『내가 이런 각서를 써줬다 한들 설마 아내가 그것을 이행하라는 소송이야 내겠느냐』는 종래 남성우월사상에서 비롯한「편안한」마음가짐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정계 일각에서「부부재산 공유제」도입도추진중이거니와 앞으로 남편들은 지키지 못할 헛약속은 삼갈 것이고 사소한 언행에도 신경을 쓰는 계 기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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