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대표·감사를 감시하라고 보낸 사외이사 40%는 정치권·관료 '낙하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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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부터 시행된 '공공기관운영법'(공운법)에 따라 늘어난 공기업 사외이사(비상임이사) 자리에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다. 대표.감사 자리뿐만 아니라 이들에 대한 '외부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할 비상임이사 자리에도 낙하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본지가 공운법 시행 이후 공기업(상임이사 3명 이상, 직원 200명 이상인 87개 공기업 대상)의 비상임이사로 임명된 95명의 경력을 분석한 결과 청와대 등 정치권 출신이 20%(19명)로 가장 많았다. 이어 관료 출신이 18.9%(18명)를 차지했다. 비상임이사 자리 10개 중 4개는 정치권.관료 출신에게 돌아간 셈이다.

◆10명 중 4명은 정치권·관료 출신=4월 1일부터 시행된 공운법은 공기업의 비상임이사 수를 이사회 정원의 절반 이상으로 맞추도록 했다.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비상임이사의 비중을 높여 대표의 전권을 견제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공기업들은 인사 적체 등을 이유로 상임이사는 거의 줄이지 않고, 대신 비상임이사 수를 크게 늘려 이 비율을 맞추고 있다.

지난달 1일 예금보험공사는 이백만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과 이용철 전 대통령비서실 법무.민정2 비서관을 비상임이사로 뽑았다. 신용보증기금은 김택수 전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을 비상임이사로 선임했다.

주무 부처 관료 출신이 산하기관에 내려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산자부 산하기관인 에너지관리공단은 김영철 전 산자부 차관보를, 노동부 산하기관인 산재의료관리원은 남석현 전 노동부 공보관을 비상임이사로 선임했다. 정치권.관료 출신에 이어 공기업(18.9%), 일반기업(10.5%), 교수(9.4%) 출신이 뒤를 이었다.

◆법 제정 취지 탈색 우려=공기업 비상임이사의 낙하산 논란은 정권 말 마지막 '자리 챙기기'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비상임이사는 정권이 바뀌어도 2~3년의 임기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운법 제정 취지도 탈색되고 있다.

국민대 행정학과 홍성걸 교수는 "퇴임 이후 자리를 찾으려는 정치권과 정부의 눈치를 보는 공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며 "비상임이사 역시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필요한데, 정치권의 비전문가로 자리를 채운다면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남대 행정학과 곽채기 교수는 "결국 경영진의 결정에 찬성 표를 던지는 '거수기' 역할만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공모를 거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에서 후보자를 추천하기 때문에 공정성을 강화했다"며 "아직 시행 초기인 만큼 섣불리 규정을 바꿀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손해용 기자

☞◆공기업 비상임이사=일반 회사의 사외이사와 비슷하다. 한두 달에 한 번 열리는 이사회에 출석하고 급여.회의참가비 등을 받는다. 상임이사들에 대해 감시.견제를 하고 대표.감사.상임이사를 뽑는 임원추천위원회에도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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