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로터리>재계,韓電수뢰등 정부에 발목 잡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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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재계가 靜中靜의 분위기다.공기업 민영화,사회간접자본 참여,공정거래법 개정등 대형 현안들이 걸려 있어 힘을 합해 목청을 돋우어도 힘든 판인데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이는 얼핏 보면 정부가 그동안 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대기업쪽에 유리한 정책들을 내놓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서서히 재벌정책을강화하고 나선데 연유하고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대기업들이 스스로 둔 자충수가 더 문제임을 알 수 있다.내로라 하는 상위 대기업들이 모두 정부에 한두건씩 코가 꿰어 자기 주장을 하고 나설 처지가 못되는 것이다. 현대그룹은 현대중공업의 장기파업으로 이미지가 실추된 데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前현대건설사장이 원전공사와 관련,安秉華 前한전사장에게 돈을 준 사실까지 밝혀져 나설 입장이 못된다.
대우그룹과 동아그룹 역시 원전 관련 수뢰사건으로 金宇中회장과崔元碩회장이 입건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선경그룹은 崔鍾賢회장의 아들 부부가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있어 자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판이다.
게다가 한진그룹은 항공노선 배정과 관련,「행정소송 불사」라는주장을 폈다가『그렇게 할 경우 관련회사에 대한 전면조사를 벌이겠다』는 정부의 으름장에 기가 죽어 있는 상태다.
삼성그룹도 삼성건설회장이 원전사업과 관련해 돈을 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곤혹스러운 처지다.
이처럼 재계를 리드하는 일부 대기업그룹들이 저마다 정부에 발목을 잡혀있는 셈이다.
韓利憲 경제기획원차관이 재계의 공정거래법 개정 반대운동과 관련,曺圭河 전경련부회장을 불러 호통을 치고 난 직후에는 그래도불평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문민시대에 정부정책에 대한 자신의 의사표현도 못하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원망을 내놓고 하는 재계인사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런 불평마저 쑥 들어갔다.『이같은 분위기 속에서는 정부에 가련하게 보여 동정을 사는 길밖에 없다』고 曺부회장이 말할 정도가 됐다.
이러다 보니 공정거래법상 출자한도 축소등 대기업그룹의 장래를좌우할 중요한 사안을 여과없이 그대로 넘겨야 할 판이다.전경련은 9월1일 이 법 개정과 관련한 공청회를 가질 예정이나 여기서 재계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지 의문 이다.
각 그룹들은 사회간접자본 사업 참여를 위해 화려한 청사진을 마련,정부에 제출해두고 있으나 적극 나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상태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마치 6共 중반 이후 정치권이 재벌 길들이기를 위해 비업무용 부동산을 처분토록 하던 때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낀다』고 말했다.
〈趙鏞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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