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좌들, 불교본질 훼손세력에 경고 … 초안에 없던 내용 ‘기습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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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경북 문경의 봉암사에서 19일 열렸던 ‘봉암사 60주년 기념 법회’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 관련 기사에 대한 인터넷 댓글도 계속 올라온다. 선방 수좌들이 토해낸 자성과 참회의 목소리에는 아직도 울림이 남아 있다. ‘청정 승가’를 향하는 그들의 ‘외침’에 때묻지 않은 간절함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날 봉암사 주지 함현(涵玄) 스님은 “한 가닥 얇은 가사는 태산처럼 무겁다”며 “개혁이란 명분으로 행해지는 선거법 철폐, 정치적 파벌화 일소, 청규에 의한 수행풍토로 복귀”등을 요구했다. 초안에 없던 내용이었다. 더구나 함현 스님은 ‘봉암사 결사 경과 보고’에다 수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녹여 넣었다. 예정에 없던 선방 수좌들의 ‘기습적 선언’이기도 했다.

법회를 마친 뒤 찻잔을 사이에 두고 함현 스님을 만났다. 전날 봉암사에서 대중공사(大衆公事·모든 스님들이 참석해 승가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자리)가 열렸다고 했다. ‘대중이 원하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승가에서 대중공사의 결정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갖는다. 함현 스님은 “수좌들의 불만이 무척 크다”고 했다.

하긴 계파를 만들어 종단에서 ‘패거리 정치’를 일삼는 이들은 정치인 스님들이다. 주지 선출 문제를 놓고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도 소수의 승려들이다. 이들은 선방과 거리가 멀다. 수좌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사고’는 저쪽에서 치고, ‘참회’는 이쪽에서 하는 형국이다. 그러니 수좌들의 불만은 ‘당연한 불만’이기도 했다. 함현 스님은 “이번 법회가 불교계의 본질을 훼손하는 이들에 대한 수좌들의 마지막 경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스로 불교계를 욕먹이는 행위에 대해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수좌들의 단호한 입장 천명이기도 했다.

조계종은 현재 “변양균-신정아 사건을 놓고 조선일보가 불교계를 음해, 왜곡했다”며 구독 거부 운동을 펼치고 있다. 봉암사측은 이에 대해서도 ‘불교적 대응’을 내놓았다. 이날 대한불교청년회(이하 대불청) 회원들이 ‘조선일보 구독을 거부합니다’란 현수막을 봉암사 경내에 걸려고 하자 만류했다. 함현 스님은 “남 탓하는 것은 봉암사 결사 정신과도 맞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결국 대불청 회원들은 경내 남원루 앞에서 현수막을 잠깐 들고 있다가 접었다. 또 구독 거부 서명운동도 벌이지 않았다. 봉암사 일주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사찰 진입로 입구에만 현수막을 하나 걸었을 뿐이다.

이날 법회에는 1만여 명의 승려와 신도들이 참석했다. 봉암사 입구에 늘어선 버스만 200대가 넘었다. 봉암사에선 재가불자들의 점심 공양을 위해 무려 쌀 12가마로 밥을 지었다고 한다. 7000명이 한끼에 먹는 분량이다. 스님들을 위해서도 1000명분 밥을 따로 지었다. 이날 행사로 몰린 불자들의 관심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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