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높은 뮤지컬 값싸게…화면 이용해 동화 구연…서울 구립 도서관 끝내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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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정보화도서관을 찾은 엄마와 자녀들이 동화 구연 프로그램에 참가해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라는 동화를 들은 뒤 케이크로 똥 모양을 만드는 놀이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사진=안성식 기자]


24일 오전 11시 서울 동대문구 구립 정보화도서관 1층 어린이소극장 안.

 2∼6세 어린이와 어머니 20명이 대형 스크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스크린에는 그림책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의 각 페이지를 스캐닝한 화면이 애니메이션처럼 흐르고 있다. 도서관 배지혜(34) 팀장과 다른 직원 두세 명이 번갈아 가며 두더지·젖소·개 따위 동물들의 대사를 구연할 때마다 ‘까르르’ 하고 어린이들의 웃음이 터졌다.

 이 도서관은 매주 수요일에 이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고급 문화센터 못지않은 알찬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프로그램 참가자는 거의 매주 오는 ‘단골’들이다.

 구립 문화시설은 ‘품격이 떨어지거나 재미가 없다’는 편견이 깨지고 있다. 이들 문화시설은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 친화형으로 운영하는 게 비결이다.

 ◆품격 높은 시설·프로그램=2005년 중구 구립 시설로 개관한 서울 충무아트홀(중구 신당동)은 요즘 뮤지컬 공연장으로 ‘뜨고’ 있다. 브로드웨이 최신 뮤지컬 ‘알타보이즈’ ‘올슉업’ ‘쓰릴미’ 등을 국내에서 초연했다. 대부분 장기 공연을 하는 덕에 관람료를 싸게 책정할 수 있다. 이곳에서 초연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VIP석 관람료도 10만원을 넘은 적이 없다. 구민은 더 싸게 본다. 관람료를 20~30% 할인 받는 연회원제 가입비가 일반인은 10만원이지만 구민에게는 2만원이다.

 2004년 문을 연 노원문화예술회관에도 정상급 연주자가 수시로 무대에 오른다. 개관 이후 성악가 조수미, 피아니스트 백건우, 발레리나 강수진씨가 여기서 공연을 했다. 정상급 예술인의 공연이지만, 입장료는 3만~7만원이었다.

 ◆이용자에게 다가가기=동대문 정보화도서관의 1층 ‘아가랑 책이랑’은 철저히 어린이를 배려한 공간이다. 냉난방이 되는 온돌바닥 공간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편한 자세로 책을 보게 한 것이다.

 이 같은 시설들은 도서관 코앞에 홍릉초등학교와 삼육초등학교가 있는 지역 특성을 감안한 것이다.

 이 도서관은 아빠·엄마의 편의를 위해 저녁 시간에 어린이를 돌봐주는 프로그램도 최근 시작했다. 매주 수·목·금요일 저녁에 아빠·엄마들이 자녀 걱정을 하지 않고 문화강좌를 듣거나 책을 보게 도와주는 것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아들·딸을 데리고 온다는 주부 박은숙(37)씨는 “난방이 되는 온돌 바닥을 놓은 것이나, 환기를 위해 어린이 코너에 식물을 많이 배치하는 등의 세심한 배려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충무아트홀은 신당동 떡볶이 골목과 ‘상호 할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아트홀 입장권을 가지고 신당동에 가면 10~20% 떡볶이값을 할인받는다.

 ◆“문호를 여니 인기”=시험 공부를 하려고 동대문 정보화도서관에 간 사람들은 허탕을 친다. 일반 열람실, 이른바 독서실이 없기 때문이다. 도서관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자는 취지로 지난해 11월 개관 당시 열람실을 아예 만들지 않았다. 도서관을 시험공부하는 곳으로만 여기던 잘못된 생각을 깬 것이다. 대신 도서관은 책을 읽고 즐거움을 얻는 곳이라는 상식을 만들었다.

  이용자의 거주지 제한을 철저히 깼다는 점도 ‘특별’하다. 여타 구립 도서관들이 구민 혹은 시민에게만 이용 기회를 주는 것과 대조적이다.

성시윤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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