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희의 남자 읽기] 그쪽이 여자라면 기분 좋을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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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21년째인 C 이사(48)는 얼마 전 영업실적이 부진한 여사원(27)을 혼내면서 판매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몸을 팔아도 그보다는 많이 팔았겠다"는 심한 비유를 했다. 결국 그는 모욕감을 느낀 당사자가 그의 발언을 성희롱 문제로 비화시키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C씨는 업무가 인생의 전부란 생각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한 전형적인 '회사 맨'이다. 젊은 시절, 실적을 올리려고 숱하게 야근을 자청했으며 일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일주일에도 몇 번씩 거래처 사람들의 술 시중(?)을 들었다. 물론 이렇게 열심히 일해도 결과가 안 좋을 땐 상사로부터 '회사 밥 축내고 살 생각 말라'는 심한 말도 들었다.

물론 그럴 땐 그도 상사에 대한 증오심과 함께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하지만 '다음엔 보란 듯 좋은 실적을 내리라'고 다짐도 했다. 그의 그런 오기와 일에 대한 집착이 오늘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다. 이렇게 성장한 그이기에 업무성과가 부실한 부하직원에게는 신랄한 비난을 거침없이 해왔다.

이번 일도 그의 일하는 스타일 때문에 생겼는데 그만 당찬 신세대 여직원에게 덜미를 잡히고 만 것이다. 다행히 악의가 있었던 발언이 아닌 데다 회사 내에서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이 인정돼 이번 사건은 어찌어찌 무마됐다. 하지만 C씨는 앞으로 2030(20대.30대)직원들, 특히 여직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서며 솔직히 자신도 없어졌다.

그렇다면 한 직장에서 매일 얼굴 마주치며 사는 사람들끼리 어떻게 얼마나 말조심을 해야 할까.

먼저 C씨는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절차상 문제가 있다면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잘못을 시정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이번 일을 통해 자신의 평상시 언행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만일 '재수없이 모진 여직원한테 걸렸다'는 식의 생각을 하다간 앞으로 또 다른 형태의 망신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C씨가 평사원으로 일하던 시절과 지금은 경제.사회.문화적 환경이 급변했다는 사실에도 유념해야 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윗사람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지금은 대통령과 평검사가 대화와 토론을 하는 시대가 아닌가. 회사 업무만 해도 영어.컴퓨터 등 젊은 층에 유리한 항목이 늘어 상사와 부하직원 간에 '서로' 돕고 살아야 할 경우가 많아졌다.

게다가 선진국에 다가갈수록 약자의 인권문제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또다시 후진국으로 전락하지 않는 한, 힘 없는 여사원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할 수 있을 가능성은 앞으로도 희박하다. 따라서 내게 익숙하지 않고, 싫더라도 C씨는 앞으로 직장에서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해답은 비교적 간단하다. 회사 여직원을 대할 때 '만일 내 딸이, 내 누이가, 내 아내가 직장에서 이런 대우를 받았다면 내 마음이 어떨까'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타당한 질책이 아닌 '언어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이번 주말엔 직장에 다니는 딸과 조카.사촌 누이를 불러 어떨 때 직장 상사가 혐오스러운지, 또 좋아 보이는지를 물어보자.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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