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산책] 서울 서초구 우면동 스튜디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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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하지 않고 아예 집에서 업무를 보는 재택근무가 늘고 있다. 매일 출퇴근 교통전쟁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꿈 같은 일이다. 그러나 일터와 집이 함께 있는 만큼 각각의 분위기에 대한 세심한 공간 연출이 필요하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화가인 건축주의 작업실과 주거공간을 함께 엮어낸 우면동 스튜디오는 단순하면서도 힘찬 조형물로 이와 같은 배려를 표현한 작품으로 꼽을 만하다.

조용한 우면동 주택가를 지나서 만나게 되는 스튜디오는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네오 큐비즘 조각처럼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를 지녔다. 대지면적 약 1백평에 총면적 80평인 건물의 형태는 단순한 육면체로 상자 모양의 조합이지만, 조합 방법과 사선 형태의 창, 천창 등을 적절히 배치해 건물 전체에 생기가 돈다.

건물 구성은 아주 단순하다.거실과 부엌 겸 식당, 침실 3개로 구성된 주택과 작업실을 평면적으로 분리하고 그 가운데를 마당으로 연결해 일터와 가정을 적절하게 연결했다. 주거공간에서 일터인 작업실로 갈 때는 꼭 마당을 거치도록 해 일단 일터로 가는 기분을 느끼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설계를 담당한 건축사 사무소 O.C.A.의 임재용 소장은 "우면동 스튜디오는 직선과 사선의 두 가지 에너지가 공존하도록 구상했다"고 말했다. 사선의 에너지는 주택의 천장선과 경사지붕이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듯한 계단실, 화실 천창 등에 표현됐으며, 나머지는 직선 에너지로 채워졌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두 가지 선의 조합은 자칫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회색의 정방형 입체에 긴장감과 함께 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우면동 스튜디오의 또 다른 특징은 '틈새'라고 임소장은 덧붙였다. 즉 건물의 북쪽과 서쪽은 막혀 있는 듯하지만 주어진 틈으로 주변 동네와 소통한다. 또 작업실과 주택 사이의 마당, 작업실과 옹벽사이의 틈, 철제 대문을 통해 들여다 보이는 안마당 등이 모두 틈새를 구성해 밖에서 보는 내부 풍경과 안마당에서 밖을 보는 양방향의 소통이 가능하다. 다만 폐쇄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프라이버시가 지나치게 노출되지 않도록 그 틈새의 위치나 크기를 세심하게 조절했다.

건축 재료는 송판무늬가 드러나는 노출콘크리트, 무늬 없는 일반 노출콘크리트, 압출 성형 시멘트판, 아연합금판, 내수 합판, 콘크리트 블록 등 재료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들이 선택됐다. 자연스럽게 나이드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배려인 동시에 주변 단독주택들이 보여주는 호화스러운 치장과 차별화하려는 건축주의 뜻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내부로도 이어져 건물 안 곳곳에 노출콘크리트와 철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가구도 가능한 한 단순한 것으로 들이고 장식물도 거의 두지 않는 것으로 일관성을 유지했다. 건물 내.외부를 통틀어 느껴지는 색채감은 회색.흰색과 나무색이 주조를 이룬다.

노출콘크리트, 정방형 입체 등으로 전형적인 모더니즘 형식을 연상시키는 이 건물을 네오 큐비즘 형태로 바꾸는 결정적 요소는 안마당에 사선형으로 배치된 계단실이다. 계단실은 가지런한 두 화음 사이에 파격적인 불협화음을 끼워넣은 현대음악처럼 수평.수직으로 아무런 규칙이 없는 형태로 끼워져 있다. 이런 분위기는 2층까지 부분적으로 트인 거실 공간, 다면 형태의 내부 천장 및 계단과 함께 질서에 저항하는 파격을 연출한다. 또한 규격형인 아파트 창과 달리 천장에 가깝게 또는 사선으로 멋대로 뚫린 창들은 실내에 재미있는 채광효과를 가져오는 동시에 야간에는 조명을 통해 독특한 동네 풍경을 연출하는 데 일조한다. 특히 작업실 윗부분에 띠모양으로 낸 창 덕택에 주택의 2층 부분은 밤에 멀리서 보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마당의 조경도 건물의 형태만큼 단순하다. 잔디 위에 동선을 유도하기 위한 나무판 이외에는 큰 나무 한 그루와 작은 나무 몇 그루, 돌절구 하나가 전부다. 또 무표정한 이웃집 뒷벽도 아무런 치장 없이 콘크리트 담 하나로 그대로 노출시켰다. 썰렁하게까지 느껴지는 이런 안마당의 조경은 건물 형태와 꼭 맞아떨어지는 모습이다.

단조로움과 무표정 속에 동적인 파격을 감춤으로써 극도의 절제가 반대로 아주 화려한 치장이 될 수도 있다는 반어법적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면동 스튜디오라고 할 수 있다.

글=신혜경 전문기자 사진=김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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