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할말은하자>17.認.허가업무 非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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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司正의 서슬이 시퍼렇던 지난해 10월 영세 세차장업주 張모씨(39)는 친척이 경영해온 세차장을 인수한후 관할구청에 명의변경신청서를 냈다.세차장양도양수서.권리의무승계신고서.허가증 원본.공해물질배출시설 변경신고서등 명의 변경하는데 필 요한 서류를모두 갖추었으나 법정처리기한(7일)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담당자를 몇차례 만나『구비서류를 모두 갖추었는데 왜 허가가 늦어지느냐』고 따졌지만「검토할 사항이 있다」「결재가 늦어진다」「앞으로 잘 해보자」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도대체 뭘 잘해보자는건지 울화가 치밀더군요.은근히 돈봉투를요구하는 것을 눈치챘지만 돈으로 해결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국무총리실로 진정서를 내고「문민정부에서 이럴수 있느냐고」고 항의했습니다.그 다음날 신고필증이 나오더군요.』 張씨는『인사치레를 하지않을 경우 영업장을 들락거리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기 일쑤지만 돈으로 해결하다간 인.허가기관의 금품수수관행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끝까지 버텼다』고 했다.
「돈쓰면 합법,안쓰면 불법」「돈을 쓰면 안되는 일도 되고 안쓰면 되는 일도 안된다」.비리가 판을 쳤던 인.허가기관의 실태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경구(?)들이다.서울시의 경우 본청및 22개 구청이 관장하고 있는 인.허가업무는 총 2백3 4건.수백억원의 건축비가 투입되는 대형빌딩건축허가에서 소규모 음식점영업허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이권이 개입된 사업을 인.허가하는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에 업자들은 금품요구가 없어도 스스로 돈봉투를 전달하기에 바빴다.구비서류를 모두 갖추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인.허가를 신청했다 하더라도 급행료.사례비.떡값 명목의 돈봉투가 오가곤 했으며 이는 한국 공무원사회의 최대 부조리로 불리는 「뇌물사슬」을 더욱 두껍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돼왔다.때문에 떳떳한 항의.진 정으로 자기권리를 찾은 소시민 張씨의 행동이 돋보이는 것이다.
새정부 출범이후 민원부서공무원들의 고압적 자세가 수그러들고 민원처리 속도가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금품요구는 좀처럼근절되지 않고 있으며 업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갖다바치는 상납행위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감사원이 지난봄 서울 시내 22개 구청의 인.허가업무와 관련된 중소규모 사업자 3백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 설문조사결과「금품 수수행위가 새정부 출범이후줄었다」는 응답이 53.7%를 차지하긴 했으나「변함이 없다」(43%)와「오히려 더 많아졌다」(2 .9%)는 응답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금품제공 동기에 대해서도 56.85%가「공직자가 요구해」라고 응답했고「자발적으로 준다」는 응답자도 48.5%나됐다. 〈金昌旭기자〉 인.허가업무 관련부서중 극심하게 비리가 판을 치는 곳이 건축관련부서.수도권에서 아파트 건축사업을 하는 S주택대표 임모씨는지난 한햇동안 도청과 시청의 녹지.주택.공원과등 관련부서 로비자금으로 5천여만을 지출했다.새정부 출범이후 노골적인 금품요구는 줄었으나 경조사비.휴가비.떡값등의 명목으로 꾸준히 돈을 전달했다.는 임씨는 평소 뇌물사슬의 연결고리를맺어두지 않으면 하자나 결격사유 없이도 3년이 넘도록 건축허가가 나오지 않는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평소 거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건축업자와 관의 거래는 토지매입.건축허가를 신청할때부터 시작돼 기초공정.전기.배관등을 거쳐 마지막 준공검사를 받아내기까지의 전 건축과정을 통해 수시로 이루어진다.건축과정중 준공검사는마지막으로 큰 돈이 들어가는 단계다.우선 준공에 필요한 소방필증을 얻기위해 관할소방서에 인사치레를 해야한다.
소규모 연립주택건설업자 김모씨는 지난해 소방법 규정대로 소화기등 소방시설을 설치하고 소방검사를 신청했으나 이런저런 트집을잡기에 담당자에게 50만원을 집어줬다고 했다.소방필증을 받아내면 건축허가부서와 준공검사를 받기위한 마지막거래가 시작된다.
건물규모에 따라 최하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준공비가 건네지지 않으면 얼마든지 준공을 늦출수있다.별다른 하자없이도준공비를 주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 준공전에 입주시키는 약점때문이다.
김씨는 입주자로부터 잔금을 받아 공사대금을 치러야하므로 준공전에 입주시킬 수밖에 없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는 돈을 줄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법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뇌물을 주고 받으며 공생하는 복마전.때문에 많은 시민들은 오만한 인.허가기관의 문턱을 낮추고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깨끗한 관계조성을 위해서는 민원인 스스로가 할말을 하는 사회풍토 조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합법적 절차를 거쳐 인.허가를 신청하고 담당자가 고의적으로법정처리기한을 넘기거나 꼬투리를 잡고 금품을 요구할 경우 떳떳이 항의하고 따지고 고발하는 성숙한 시민정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할때 비로소 뇌물사슬의 연결고리느느 끊기게 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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