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짜낸 일자리' 얼마나 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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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올인' 전략으로 들어간 것 같다.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올해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자마자 모든 정부부처가 경쟁적으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을 내놓았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일자리 창출의 중요성과 그를 위한 기업투자와 경제활성화의 필요성을 인식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출범 당시의 대안 없는 분배 우선 정책에서 대통령이 스스로 '일자리야말로 최고의 복지며 가장 효과적인 소득분배 방법'이라고 언급하게 된 사고의 전환에 이른 것은 우리 경제의 앞날을 위해선 매우 바람직스럽다.

*** 기업 투자 활성화가 근본 해법

문제는 일자리 창출이 이 치열한 국제 경쟁 사회에서 구호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자리란 기본적으로 기업이 생산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필요가 있을 때 투자를 늘림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투자 활성화가 관건이다. 그러나 각 정부부처가 내놓은 정책들은 모두 정부지출을 통해 공공부문에서 억지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돼 있다. 재정경제부의 사회적 일자리 8만2천개와 고용증대 특별세액공제를 통한 일자리 30만개 창출, 행정자치부의 지방공무원 5천명 증원, 노동부의 근로자 정년 60세로 연장, 과학기술부의 이공계 채용의무화를 통한 석.박사 일자리 1만개 창출, 정보통신부의 정보기술(IT) 분야 일자리 20만개 창출 등이 그것이다.

돈을 풀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일자리는 돈이 끊기는 순간 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규제완화와 노사관계 안정을 포함한 민간부문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다양한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걸리기에 민간부문 경제가 회복될 때까지 당분간 정부재정을 투입해 공공부문에 일자리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머지않아 기업투자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몇 개월 후 기업투자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그동안 투입됐던 정부재정은 허사가 되어 결국 재정적자만 심화하고 인플레이션만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역시 관건은 기업의 투자 활성화와 경제성장인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 관련 정부정책의 결정과정을 보면서 여전히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의 보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선행되지 않고는 우리 경제가 근본적으로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첫째, 경제문제는 '획기적인' 정책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획기적인 정책을 요구하고 관료들을 질책하면 할수록 그들은 임기 동안 단기적인 업적과 책임회피를 위해 편법적.미봉적 정책을 낼 수밖에 없다. 작금의 천문학적 가계부채와 카드사 부실, 부동산가격 불안정이 그 결과다. 꾸준히 시장경제의 원리와 경험을 거스르지 않고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것만이 부작용 없이 성장하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정도'다.

둘째,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같이 단기적인 정책을 불가피하게 내세울 때 그 성과를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세금감면을 통한 30만개의 일자리, 정년 연장, 석.박사 일자리 1만개, IT산업 20만개 일자리 창출 등이 구호로는 통할지 몰라도 이 나라의 어떤 기업이 그 수치에 동의할까. 그리고 이러한 단기적인 정책의 한계와 부작용을 분명히 해야 한다.

*** 단기효과 노린 정책 성공 못해

마지막으로, 과거에도 상존했던 복잡한 규제와 노사관계 불안 외에, 왜 기록적 수출신장이 설비투자와 일자리 증가로 연결되지 않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구조의 해결 능력에 대한 불안감, 한.미동맹 정책 구상 회의 바로 전날 '자주 외교'를 이유로 외교부 장관을 경질하는 우매함,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에 국가균형발전을 통해 연평균 6.6%의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무모함, 연일 국민을 짜증스럽게 하는 혼돈의 정치와 정치개혁만 이루면 경제는 저절로 잘될 것이라고 믿는 몽매함 등 안개와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아직 기업들로 하여금 투자를 망설이게 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