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평화체제 논의’ 입장 명확히 한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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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북 정상회담에서 ‘3, 4자 정상 종전선언 추진’이 합의된 뒤 이의 개최 시기 등을 둘러싸고 혼선이 벌어졌다. 노무현 정권은 이런 회의가 임기 내 가능할 것처럼 분위기를 잡아 나갔으나, 미국 측이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북한의 핵 폐기 후에나 종전선언 논의가 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힐 차관보의 발언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뉴욕 필의 북한 공연 추진 등 민간 차원의 교류가 유례없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러나 힐 차관보의 언급에서 확실하게 드러난 것처럼 북한이 명실상부한 핵 폐기를 한다는 것이 대전제다. 특히 이 정권이 매우 바라는 ‘평화체제 논의 착수’도 최소한 ‘플루토늄 50㎏의 폐기’가 이뤄진 뒤 가능하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이 정권이 앞으로 역점을 둬야 할 일은 자명해졌다. 첫째, ‘3, 4자 정상 종전 회의’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전 종전선언만을 위해 남북한과 미·중의 정상들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무리 아닌가. ‘종전선언’ 자체가 필요하냐는 논란도 있지만, 설사 그렇게 한다 해도 그 급은 외교 당국자가 되는 게 자연스럽다. 둘째는 미국이 바라는 수준의 핵 폐기에 북한이 호응할 수 있도록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힐 차관보의 발언이 북·미 간 내막적 합의에서 나온 것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면 북핵 폐기까지는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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