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바둑칼럼>바둑CATV 프로기사들 17만株신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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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젊음의 거리라 일컬어지는 서울종로2가 관철동에서 가장 이색적인 건물은 韓國棋院일 것이다.출렁이는 매연의 물결속에서 해가 뜨나 달이 뜨나 無心으로 바둑돌만을 두드리는 곳.
이곳에 요즘 때아닌 주식바람이 불고 있다.바둑 CATV에 한국기원이 전격적으로 참여를 결정하면서 世外異人처럼 살아온 프로기사들이 너도 나도 주식매입에 나선 것이다.
曺薰鉉9단은 東洋증권배 우승상금 1억원을 몽땅 털어 1만4천주를 신청했다.趙南哲9단은『나는 단칼멤버인데 무슨 돈이 있겠나』하면서도 3천주,金 寅9단은 1만주,劉昌赫6단도「王位」상금을털어 5천주.동참의 의미로 최저단위인 2천주를 원한 棋士들이 많지만 주위의 자금을 모아 1만~3만주까지 신청한 棋士도 있어승부사답게 바둑 CATV와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비장한 분위기마저 엿보인다.
액면가는 1주에 5천원.실제 구입가는 7천1백50원.처음엔『기사들이 누가 보이지 않는 승부에 돈을 걸겠느냐』고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17만주나 신청이 쇄도해 棋士들에게 배정된8만주를 훨씬 넘어섰다.유명기사중 徐奉洙9단과 李昌鎬7단만이 계속 오불관언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둑CATV는 지난해부터 兪建在6단(46)이 추진해왔다.해동화재의 유능한 영업부장이고 SBS바둑해설자인 그는 趙南哲.金 寅.曺薰鉉등 간판기사들과 추진위원회를 구성,자본주를 끌어들이고전문가들과 방대한 사업계획을 짰다.그러나 바둑에 관한한「소프트웨어 그 자체」라 할 韓國棋院이 行馬를 결정하지 않는한 이 모든 것은 사상누각이었다.
2주전 한국기원이사회가 참여를 결정했다.東洋그룹의 玄在賢회장(한국기원이사장)이 두달여의 실무검토 끝에 성공가능성이 높다고합격판정을 내리자 大宇의 金宇中회장(총재),롯데의 辛俊浩부회장(이사),眞露의 張震浩회장(이사)등 재계의 거물 바둑팬들이 두말없이 손을 잡았다.사내에 프로기사간부를 2명이나 고용하고 있는 해동화재의 金孝一사장도 당연히(?)참여했다.출발자본금은 40억원(80만주).
한국기원에 이중 30%(24만주)의 무상지분이 할애되었고 이때문에 5천원짜리 주식이 7천원이상이 됐다.한국기원은 돈 한푼안내고 대주주가 된 것이다.
운영은 전문경영인이 하겠지만 프로기사들은 일단 東洋그룹이 주체가 되리라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어쩌면 東洋등 든든한 대기업들의 참여로 프로기사들이 안심하고 주식매입에 나선 것인지도 모른다.
40년전 한국기원은 기원건물을 빌리지 못해 바둑판을 메고 거리를 전전해야 했고 그후 세계 최강으로 바둑실력이 성장했음에도理財에 어둡고「주인없는 단체」라는 속성때문에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진 건 별로 없다.
이번엔 승부수를 던졌다.인기기사에 가려 고생했던 기사들은 10년안에 1백배 성장잠재력이 있다는 대학교수들의 분석결과에 크게 고무돼있고 기대도 대단하다.이달말 허가가 나면 빠르면 내년3월,늦어도 10월1일 이전까지 방송을 개시해야 하고 그때부터어림잡아 매일 8~15시간씩 바둑이 방영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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