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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닝 서프라이즈’로 大豊 왔지만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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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22면

날씨가 쌀쌀해졌지만 주식시장은 더없이 훈훈하다. ‘가을 수확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지난주부터 3분기 실적발표가 줄을 잇고 있다. 올해 추수철은 남다르다. 마침 주가가 2000포인트를 돌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자자 눈초리가 온통 기업들의 작황에 쏠리고 있다. 그러나 풍년가(豊年歌)의 기쁨은 준비한 자에게만 온다. 실적 경연장에서 쭉정이 대신 알곡을 쏙쏙 고르기 위한 포인트를 짚어봤다.

주가 2000시대에 찾아온 3분기 실적

■가문의 부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무엇보다 LG가(家) 형제주들의 선방을 기대하고 있다. 맏형 격인 LG전자부터 그렇다. 최근 미래에셋증권은 8만8000원대인 LG전자의 목표주가를 12만5000원으로 30%가량 높였다. 휴대전화 사업이 잘되고, PDP 부문의 수익성 개선에 따라 3분기 매출이 9조8000여억원(전년 대비 11%↑), 영업이익은 2800여억원(34%↑)으로 추정돼 2분기 연달아 ‘놀라운 실적’이 기대되는데도 주가는 낮다는 이유였다.

9일 실적발표의 첫 테이프를 끊은 LG필립스LCD도 멋지게 서곡을 울렸다. 매출은 당초 예견된 4조원 가량이었지만, 영업이익이 시장의 추정치보다 33% 많은 6930억원으로 ‘깜짝 실적’을 공개했다. 3분기에 공급이 달려 제품값이 오른 데다 원가절감 등으로 장사를 잘했다. 다만 대우증권 강윤흠 연구원은 “비수기인 4분기·1분기가 눈앞이어서 주가상승 모멘텀은 둔화될 수도 있다”고 했다.

LG석유화학·LG생명과학 등의 주가도 최근 일제히 1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며 펄펄 날았다. 애널리스트들은 지난해 말 경영진 교체를 신호탄으로 구조조정 드라이브를 건 구본무 LG 회장의 ‘적시(適時) 리더십’에 점수를 줬다. 그 결과가 3분기 만에 가시화되면서 LG전자가 삼성전자와의 주가 차이를 ‘10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으로 좁히는 열매를 맺었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 위기론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삼성전자는 12일 실적발표에서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여줬다. 반도체·휴대전화·LCD 3인방이 고루 선전하면서 매출 16조6800억원(전년동기 대비 10%↑)과 영업이익 2조700억원(12%↑)을 올렸다. 모두 시장 기대치를 넘은 것이다. 그러나 많은 증시 애널리스트들은 반도체 경기가 여전히 불안해 삼성전자의 이익감소 트렌드가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닷컴의 재기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요즘 NHN에 붙은 별명이다. 매일 주가가 오른다. 올 들어 상승률은 127%에 이른다. 미래에셋이 5일 만에 5% 넘는 주식을 샀다는 말에 투자자들이 따라 몰리기도 했다. 인터넷주는 한때 거품의 원흉이었다.

한데 NHN을 보면 이런 말이 쏙 들어간다. 3분기에 2300억원의 매출과 1000억원가량의 영업이익이 기대되는 알짜 회사다. 지난해보다 10%가량 증가한 수치이고, 검색광고·게임 등에서 고루 선전했다. 동양종합금융증권 이창영 연구원은 “매출의 절반이 넘는 검색광고 시장에서 80%가량의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고, 향후 이익성장률이 미국의 유명 인터넷업체인 구글보다 높다”며 후한 점수를 줬다.

인터넷주는 세계적으로도 화두다. 최근 한 달간 미 구글과 야후가 8%가량 올랐고, 중국의 1위 검색업체인 바이두도 50% 올랐다. 대우증권은 “올 3분기 국내 인터넷 업체들의 실적이 사상 최대”라고 추정했다. 다음·네오위즈게임즈·인터파크 등의 영업이익도 50~70%의 증가율을 거둔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애널리스트들은 앞으로 NHN의 주가가 일본에서의 검색사업 성패에 좌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증권 박재석 연구원은 “지난 7년간 일본 시장에서 경험을 쌓았고, 2000만 명의 한게임 이용자 등을 감안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다만 서울증권 최찬석 연구원은 “인터넷 서비스는 문화상품이고 정서적 진입장벽이 높아 현지 업체들이 득세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구관이 명관

현대중공업은 10일 사상 처음으로 50만원 고지를 찍었다. 연초 12만원대에서 출발해 이젠 삼성전자 주가까지 넘볼 기세다. 올해 용광로 장세의 ‘스타 종목’이 바로 현대중공업을 위시한 조선주와 POSCO 같은 철강주였다. 이른바 ‘차이나 플레이(China play)’로 불린 중국 관련주다. 중국의 기관차 성장을 비료 삼아 대풍(大豊)을 누려 곳간에 돈을 수북이 쌓았고 주가도 치솟았다.

이들의 선전은 진행형으로 보인다. 삼성증권은 본격적인 고가선박 건조와 신흥시장의 인프라 확대에 힘입어 조선·기계 등이 3분기 실적개선의 주연배우 역할을 할 것으로 봤다. 종목별로는 현대중공업의 경우 2005년에 수주한 주문을 3분기부터 본격적인 매출로 계산해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90%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철강주도 내년까지 국제적 수요가 넘쳐 가격 오름세가 이어지리라는 전망이다. 그동안 이들 종목의 상승폭이 커서 다른 소외주를 눈여겨보는 투자자들도 많지만, 아직 추가상승 기대를 버릴 때는 아니라는 시각인 것이다. 무엇보다 올해 주도주의 전반적인 3분기 실적이 좋은 것으로 확인되면, 지금까지의 상승폭을 정당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천수답은 옛말?

요즘 주식시장에선 하루 평균 10조원의 뭉칫돈이 왔다갔다한다. 주식을 직접 사고파는 돈이다. 그 덕을 보는 임자는 바로 증권사다. 대우증권 정길원 연구원은 “8조원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거래 대금과 새 펀드로 꾸준히 돈이 들어오면서 ‘마르지 않는 샘’처럼 증권업의 이익안정성을 높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호재를 타고 주가 오름세는 파죽지세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달 들어 10만원대를 돌파해 12만원까지 솟았고, 삼성증권도 그 뒤를 바짝 쫓으며 함께 ‘10만원 시대’를 열었다. 지난 8월 중순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조정을 보인 증시가 회복한 데 힘입어 두 회사의 주가상승률도 지금까지 70%에 이른다.

문제는 지금 같은 시황이 지속되느냐다. 증권업은 시황 따라 울고 웃는 천수답(天水畓) 종목 신세였다. 하지만 중장기 전망도 나쁘지 않다. 직접 거래 말고도 펀드시장이 확실히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다. 또 자본시장통합법이 2009년부터 시행되면 투자은행(IB) 업무는 물론 다양한 신상품을 통해 수익원을 다각화할 수 있고, 은행에서 증권으로의 무게 축 이동이 가열되면서 증권업계가 새 도약기를 맞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증권업계는 금융감독 당국이 이달 안에 증권사 신규설립 기준을 발표키로 하는 등 자통법과 함께 앞으로 ‘구조조정 빅뱅’ 관문을 넘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이번엔 정말 다르다는데

“실적은 무슨 얼어죽을~.” 실은 많은 투자자가 그동안 이렇게 비아냥댔다. 한국투자증권 박소연 연구원은 “지난 2년간 실제 성적표가 연초 전망치보다 크게 낮아지면서 실적시즌이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쯤으로 치부됐다”고 했다. 2005년엔 연초 보합권이던 기업 이익증가율이 연말에 -10%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이어 다음해에도 처음 12%였던 이익증가율이 -7%로 낮아졌다. 그러나 박 연구원은 “그동안 낮아지기만 했던 실적 전망치가 경기선행지수 상승세와 함께 3분기부터 상향 추세를 보인다”며 남다른 의미를 둘 만하다고 강조했다. 실적개선이 두드러진 산업재·소재를 빼고 올해 기업의 이익증가율 전망치는 지난 5월 2.7%에서 10.6%까지 높아졌다. 다른 업종들도 고루 선전했다는 말이다.

다만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위원은 3분기 실적에 대해 “시장은 이글(eagle), 업종은 버디(birdie), 종목은 파(par)로 부를 만하다”고 했다. 전체 기업의 영업이익은 30%가량 급증했지만 늘 그렇듯 음지와 양지가 엇갈릴 것이라는 얘기다. 통신서비스·제지·음식료 등의 영업이익은 뒷걸음질친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현대증권은 “4분기를 정점으로 영업이익율 증가세의 둔화와 함께 이익 모멘텀의 약화가 예상된다”며 마냥 장밋빛 기대에 빠지는 것은 삼가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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