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함께>5년만에 스크린 나들이 최명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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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장미빛 인생』을 본 사람이 한강을 건너는 아침 차안에서『여름에 비가 많이 오지 않아 가을의 낙엽은 어떤 색을 띠게 될지궁금합니다.어젯밤 저는 열흘만에 내리는 밤비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어요.창가의 바람엔 가을의 향기가 실려있 었지요』라는 최명길의 FM방송 목소리를 듣는다면 혼란을 빚을지 모른다.
영화 『장미빛 인생』(8월6일 단성사 개봉예정)에서 생활력 강하고 억양이 튀는 억척 노처녀 만화방 주인 최명길이 오버랩된다면,촉촉하고 허스키하며 분위기 물씬나는 그녀의 음성은 분명 웃음을 자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이미지는 상당부분 최명길이 지닌 본질적인 요소를 담고있지만 실제의 최명길을 감상(?)하는데 절대적 판단의 기준은 못된다.『도회적이고 이지적이며 차분하다는 이미지가 강한 저에게변두리의 음습한 만화방 여주인역을 맡기려 한 제작팀에 궁금증을갖기 전에 먼저 감사했습니다.저를 택한 이유가 전혀 어울리지 않을것 같으면서도 능히 역을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그땐 연정을 읽혀버린 짝사랑의 포로같은 심정이었어요.』「나이가 좋구나」하는 정체불명의 느낌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는 그녀는 『뭔지 모를 표현욕구에 사로잡혀 지난 두달 동안 완전히영화에 빠져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촬영이 끝나고 개봉만 남겨 놓은 현재 곰곰 생각해보면 그것은『나를 찾고 싶은 욕구가 일으킨 요동같은 것이었다』는 것.실크혼방의 검정색 미니원피스에 옥색 재킷을 벗어 든 그녀는 몸은 몇번 휙 돌렸지만 그 「요동」을 설명하진 않았다 .하지만 최근어떤 변화를 겪고 있음을 내비쳤다.여성이 나이를 말하고,결혼하고픈 남성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변명(?)하며 정직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토로할 때 거기엔 분명 심상치 않은 변화가 자리잡고 있게 마련 아닌가.
『연기자와 스태프 모두 겉멋 안내고 진지하게 영화에 임한 것같아요.5년만에 영화를 찍으면서 저의 연기와 실제의 최명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데모와 노동운동이 주무대로 수놓인 80년대 심야 만화방이라는 언저리에서 깡패와 노동운동가.
작가 지망생의 분투를 포용하는 노처녀 만화방 주인으로 나온 최명길은 숨겨진 자신의 또다른 면을 이번에 발견하는 기쁨을 얻었단다.그러나 그 기 쁨이 都農 접경지의 평범한 아줌마로 나왔던『우묵배미의 사랑』(88년)에서 찾지 못한 「의식」을 의미하는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81년 MBC 13기 탤런트로 연예인이 된 최명길은 지금까지순탄하고 운좋은 길을 달려왔다.동기생 중 제일 먼저 고정배역을받더니 90년 MBC드라마『그 여자』로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수상을 거쳐 지난 4월 종영한 SBS드라마 『 결혼』까지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는 거의가 인기를 끌었다.
86년『눈짓에서 몸짓으로』로 영화에 데뷔,같은 해『안개기둥』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음으로써 그녀는 당대의 가장 화려한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이후 영화『우묵배미의 사랑』,『밀월』(90년)에 출연하면서 최명길은 TV와 영화 양쪽에 서 독특한 자리를 굳혔다.
게다가 라디오 음악방송의 진행자로까지 활동해온 것을 보면 그녀는 일욕심이 많고,또 성공적으로 해내는 승부사 근성이 있는 것같다. MBC FM의 『최명길의 음악살롱』은 2년넘게 사랑을받고 있다.얼마전까지 늦은 밤에 팬들을 찾았던『음악이 있는 곳에』선 우아한 드레스로 盛裝하고 나와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차 한잔을 마시고 싶은 여자로 가장 선호도가 높다는 모잡지의 기사를 저도 알아요.그런데 왜 차 한잔뿐입니까.인생을 함께 하고픈 여성이 되고싶어요.』 화면보다 얼굴이 작은 여자.키도 작은 여자.차분하고 세련되었지만 싸움도 잘 할 것같은 여자.그러나 나이 서른을 넘긴 지금이 그녀에게 사색을 요구하는 계절이 되고 있는 女性.취미도 별로 없는 평범한 연예직업인이지만,분명 어떤 큰 변 화가 감지되는 현대인.그것이 최명길이다.
〈李揆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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