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시베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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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주목을 끈 것은 주로 자원 때문이었다. 고대와 중세시대엔 모피수(獸) 등을 확보하려 사냥꾼.무역상 등이 몰려들었고, 근대 이후엔 원목.석유.금.철강 등 전략자원을 확보하려고 열강들이 진출경쟁을 벌였다.

이런 자원전쟁은 열강들의 통혼(通婚)외교와 공관개설 경쟁을 부추겼다. 이 때문에 영국.독일 등 유럽의 대다수 왕가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와 혈연적으로 대부분 4촌 이내로 연결돼 있었고,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 등지에 호화로운 공관이나 대표부를 건설하는 데 열중했다. 또한 전략적 이해가 걸려 있는 시베리아 지역이나 유전지대 등에는 수시로 대표단을 파견하기도 했고 민간대표부 형식으로라도 외교망을 건설하는 데 열심이었다.

볼셰비키 혁명 후 러시아가 공산국가가 되면서 러시아 자원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또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제외한 지역의 공관은 원칙적으로 철수됐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서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파이프 라인을 건설했고, 냉전종식 후엔 카스피해 유전과 시베리아 석유를 확보하려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전략지역엔 자신들의 거점을 하나라도 더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열강들의 자원획득 전쟁이 가장 치열한 곳은 한국과 지리적.역사적으로 매우 밀접한 시베리아와 사할린 지역이다. 이미 사할린 지역엔 세계 주요 석유 메이저들이 전부 진출해 있고 일본과 중국도 밀려나지 않으려 치열한 로비와 정보수집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사할린의 웬만한 호텔은 1년 이상 예약이 밀려 있고 각국 외교관들과 대표부 직원들의 출장이 잦아 또 다른 외교전쟁터가 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게 자원 밀집지역에 대한 공관개설 경쟁으로 이어져 미국.독일.일본.중국 등은 물론 몽골.폴란드.북한 등도 경쟁에 나서고 있다. 반면 한국은 냉전으로 인해 이 지역 진출이 반세기나 막혀 있었으며 아직 이 지역 공관 개설 계획도 없다. 가깝게는 우리 독립군의 활동무대였고 멀게는 발해의 무대였던 이 지역에 역사적.민족적으로 연고도 없는 다른 국가들이 치열한 진출경쟁을 벌이는 이때, 총영사관 개설을 기대해본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