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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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써니엄마를 만나러 온 건데요,아주 급한 일이에요.』 내 말에,나비넥타이가 뭐라구? 하는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그게 누굴 말하는 거지? 여기서 뭘 하는 사람이래?』 『아마 주인일 걸요.사장이나 뭐…하여간요.』 나는 써니엄마가 주인이 아니고는 서교동의 그만한 집에서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그렇게 말한 거였다.나비넥타이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니 이름이 뭐야? 무슨 일 때문에 왔다고 그러지?』 『그냥달수라고 그러면 잘 아실 거예요.』 나비넥타이가 안으로 들어갔다가 오 분쯤 뒤에 다시 나타나서는 손가락으로 따라 들어오라는표시를 했다.대리적 계단의 융단이 깔린 부분을 밟고 내려갔더니호텔 복도처럼 양편으로 방문들이 쭈욱 나란히 열지어 있었다.나비넥타이가 한 방문 을 열고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거긴 무슨 영화에 나오는 왕족의 응접실 같았다.대리석 테이블이 가운데 있고 테이블 가에는 고급 소파들이 놓여 있었다.나는한 소파의 한가운데에 앉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어디선가 밴드에 맞춰 노래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이삼 분쯤 됐 을까.노크소리가 났고 써니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써니엄마는 전에 밖에서 봤을 때의 모습이 아니었다.팔소매가 없고 가슴이 깊게 파인 원피스 차림에 굽이 높은 뾰족구두를 신고 있었다.머리를 세워서 뒤로 넘긴 데다가 귀걸이를 했고 목걸이도 두 개나 했고 팔찌까지 하고 있었다.써니엄마 가 내 앞자리에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그 동작이 아주 우아하고 당당했다.
그러는 동안 써니엄마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긴 너희들이 올만한 곳이 아닌데…따위의 말도 하지 않았다.
『아까 마형사라는 분이 학교로 절 찾아왔었어요.』 내가 먼저말을 꺼냈는데도 써니엄마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선희엄마께서 절 의심하는 것처럼 말했어요.마형사님은요.』 『토요일 날 밤에 선희하고 있었던 일을 내게 말해줘.』 써니엄마가 그 방에서 처음으로 낸 목소리였다.그때까지 내게 화가 나서 말을 하지 않고 있었던 건 아닌 것같았다.써니엄마는 어쩌면내가 그곳으로 찾아간 것 때문에 당황한 건지도 몰랐다.
『…맞아요.우린 그날 같이 잤어요.』 『선희가 원했다고 했지.지난번에.』 『써니가…선희가 자기 방으로 절 데리고 갔어요.
그리구….』나는 싱글 베드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그만두고 다른말을 했다.『약속은 유치하다고 그러면서…내가 집에 가야겠다고 하니까 선희가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저한테 줬어요.
… 이거요.』 나는 목걸이를 해서 걸고 있던 써니의 반지를 꺼내서 써니엄마에게 보여주었다.나는 써니엄마가 반지를 달라고 하면 줄 생각이었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써니엄마는 혼자 무언가 깊이 생각해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형사님이 빨리 연락해달라고 그랬어요.선희엄마를 찾지 못하겠다구요.…남한강 어딘가에서 여자애가 발견됐는데요,오늘밤 안으로 양평에 가서 확인하지 않으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넘어가서 해부를 해야 한대요.』 『뭐…뭐라구…?』 써니엄마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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