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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ㄴㄷㄹ,ㅏㅑㅓㅕ” 561돌 한글날에 즈음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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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현재 지구상에는 약 6800개의 언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문자로 적을 수 있는 것은 불과 40여 종뿐이다. 그중 한글은 만든 사람과 시기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문자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자 유네스코는 1997년 한글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해 우수성을 인정했다. 나아가 유네스코는 한글날에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에게 ‘세종대왕상’을 수여하고 있다. 국제기구가 왕의 이름으로 수여하는 상은 세종대왕상밖에 없다. 최근에는 한국어가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의 공식 언어로도 채택됐다. 얼마 전 영국 옥스퍼드 언어학 대학은 세계 모든 문자의 과학적 순위를 매겼는데 현존하는 최고의 문자는 한글이라고 발표했다. 한글의 위상도 사용 인구 순으로 볼 때 세계 12위(8000여만 명)라고 한다.

그런데 올해 초 모 기관의 한글능력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가 예상되던 대학생과 10~20대의 평가 점수가 최하위였다. 게다가 지상파 방송은 온통 외래어 투성이다. 인터넷 속에 난무하는 국적불명의 외래어와 난수표 같은 은어· 속어, 통신언어 유행을 타고 번식하는 파괴적인 단어들이 우리의 바른 언어생활을 훼손하고 위협하고 있다. 이는 한글을 멍들게 하는 대표적인 폐해 현상이다. 93년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공포됐지만, 이제 표준 한국어는 사전이나 일간 신문사 사설, 교과서에서만 찾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오랜 분단으로 남북한의 한글 이질화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문자·언어는 시대 흐름에 따라 부침한다. 표준어는 물과 공기와 같아서 일단 파괴되면 복구하기 어렵다. 해마다 한글날이 되면 한글학회 등 관련단체의 행사와 국어 사랑 호소가 나오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것 같다. 바람직한 유산이란 모두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후대에 전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자라나는 세대가 독서, 독후감 쓰기, 편지 쓰기 등을 통해 고운 말 바른 말을 사용토록 해 국어가 올바르게 발전 계승되도록 해야 한다.

박명식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