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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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무 말도 않겠다는 표시였다.내 대답을 기다리던 써니엄마가 커피숍으로 들어서서 구석자리를 잡고 앉았다.나는 써니엄마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으면서속으로 말했다.
그 토요일 밤에는,정말이지 써니와 내가 원하지 않은 일들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니까요.그리구 내가 아무리 정직해지고 싶어도,그리구 내가 아무리 써니의 엄마에게라고 해도 그런 일은내 입으로 말하지 않는 게 예의같거든요.내가 써 니에게 지켜주어야 할 예의 말이에요.그런 일은 써니 자신만이 누구에겐가 말할수 있는 거지요.
써니엄마는 담배를 피워물고 멍한 시선을 하고 있었다.그러다가몸을 앞으로 숙이고 내게 말했다.
『너희들 혹시… 무슨 일 있은 건 아니니.내 말은… 같이 자거나 그런거 아니냔 말이야.』 나는 당황해서 엉뚱하게 주문받는사람을 불러서 커피를 시켰다.써니엄마도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주문을 더했다.나는 무언가 대답하기 전에 시간을 벌면서 망설인거였다. 주문받는 아가씨가 간 다음에 나는 마음 먹은대로 대꾸했다.나는 이제 어른처럼 굴어야 한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제게도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바로 이런 질문요.정말 미안하지만요.』 커피가 왔고,써니엄마는 새 담배를또 피워물었다.써니엄마는 내 말에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그렇다면 그건 좋아 하는 표정이었다가 중얼거렸다.
『선희가 사라졌어.어젯밤에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구 전화 한통없어.절대로 이런 애가 아닌데.… 난 달수를 야단치려구 온게 아니야.선희를 빨리 찾아야 하잖아.난 지금…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어.』 그제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써니는 그야말로 그럴 애가 아니었다.행방불명이라니… 정말이지그 일이 충격인 건 아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친구들이나 학교에도 알아보셨나요.』 『애들은 다 모른다는 거야.학교에는 아직 말하지 않았어.…괜히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이상한 건 하나도 없었나요.써니가요… 요즘에요….』 써니엄마는 초점을 잃은 시선으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나도 무언가를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머리속이 텅 빈 것 같았다. 『…써니는요,선희는 후회할 일을 무조건 저질러놓고 볼 그런애는 아니에요.선희가… 충격을 받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구요.』나는 쓸데없는 소리를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신고를 해야겠어.…그렇지?』 써니엄마가 담배를 비벼 끄면서 결론처럼 말하고는 내게 동의를 구했다.나는 그러는 써니엄마가 고마웠다.
『…경찰에 말인가요?』 『같이 가주겠어?』 써니엄마는 곧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이었고,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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