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정상 강력한 의지가 “버팀목”/남북예비접촉 타결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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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뢰구축해야 공존체제” 공감대
남북한의 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양측 최고당국자가 정상회담을 실현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1차적으로 작용했다.
정상들의 강력한 의지는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의 갑작스런 남북한 교차방문과 함께 시작된 일련의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지난해 2월『동맹국의 이익이 민족의 이익에 우선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정상회담 개최의사를 강력히 천명한 김영삼대통령은 방북하는 카터 전미대통령에게 자신의 정상회담 개최 의사가 진지한 것임을 설명했다.
이를 전해들은 김일성주석도 『의제같은 문제로 정상회담 개최가 지연되는 일 없이 빠른 시일내에 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밝혔다.
두 정상이 간접통로로 아무런 조건없이 하루빨리 만나자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한 셈이다.
두 정상의「무조건적인 만남의 의지」는 예비접촉 대표들을 실질적 권한을 가진 부총리급으로 선정할때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28일 예비접촉에서 양측 대표들은 매우 융통성 있는 협상자세로 전례없는 마라톤회담을 벌이면서 정상들의 강력한 회담의지를 성사시키려 노력했다.
특히 양측 정상들이 이들의 회담 장면을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면서 협상에 개입한 사실은 정상들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양측 정상들의 이처럼 강력한 만남의 의지 배경에는 여러가지 환경적·역사적인 요인들이 있다.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마무리 돼가는 냉전종식의 조류.
동구권의 몰락과 사회주의 종주국 구소련의 붕괴로 완성된 냉전종식은 북한에는 심각한 체제 위협으로 작용해왔다.
이런 위협에 북한은 지난 90년과 92년 계속된 남북고위급회담등 남북한 당사자간 교섭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고 점진적인 체제개방으로 적응하려는 자세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개방의 물결이 결국 체제붕괴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한 북한은 지난해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함으로써 핵카드 활용 정책으로 전환했다.
핵카드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압력을 유예할 수 있으며,또 개혁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의 확보도 노린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핵의혹을 해소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차츰 강화되면서 북한은 국제사회와의 대립정책이 더이상 지속될 경우 개방을 통한 생존의 기회가 아예 박탈될 수도 있다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최근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대북한 제재분위기 고조는 북한에 이같은 한계를 깊이 인식시켰다.
한편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한 평화공존 체제를 하루빨리 이루어야 할 필요성은 한국으로서도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우선 북한이 제기하고 있는 핵위협은 안보불안의 요소가되고 있으므로 이를 제거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과제다.
정부는 핵의혹의 완전한 제거는 남북한 상호사찰을 통한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이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 상호사찰은 남북한간에 신뢰구축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이 지난 1년여간의 지루한 핵협상에서 이미 확인됐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정부는 북한핵문제가 대화로 해결되지 않고 강경대치로 진행될 경우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이는 경제활동에 큰 영향을 주게됨을 여러차례 경험했다.
나아가 한반도는 냉전시대부터 미·일·중·러시아 등 4대강국의 이해가 팽팽히 맞서는 지역이며, 냉전이 종식되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들 주변 4대강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남북한 모두의 이익이 침해당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도 남북한 당국이 고려해야 하는 요인이다.
결국 정상회담 개최합의는 신뢰구축을 통한 평화공존체제 확립을 모색하며 서로 공영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남북 양측의 이해를 같이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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