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58. 타버린 모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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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979년 KAIST에 입학한 대학원생 이완(右)씨, 필자(中),대학원생 이병욱(현 이화여대 교수)씨.

“교수님, 큰일 났습니다. 전자석 콘트롤 모터가 탔습니다.”

1981년 거대한 전자석으로 MRI 연구장치를 조립하고 있을 때였다. 전자석을 조절하는 모터가 타버린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110V 전기를 사용했으나 KAIST 연구실에는 110V와 220V 콘센트가 모두 있었다. 한 학생이 110V용 모터를 220V에 꽂은 뒤 스위치를 켠 것이다. 조금 있다 모터가 타는 냄새를 풍기며 망가졌다. 전자석 콘트롤 모터는 독일제였다. 한국에서는 살 수도 없었다. 다시 주문하면 6개월 이상 지나야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없으면 MRI연구 장비를 전혀 가동할 수 없다.

가뜩이나 주변에서 내 연구실을 주시하고 있고, 갖은 악담을 하고 있는 마당에 모터가 타버렸으니 암담할 뿐이었다. 나조차 해결 방법을 못 찾고 있었다. 하루가 급한 판에 핵심 부품을 구할 길이 없으니 걱정이었다.

석사 과정이었던 이완(현재 미국에서 사업 중) 학생이 한번 고쳐보겠다고 나섰다. 서울 청계천에서 같은 굵기의 구리선과 절연막 등을 사왔다. 타버린 모터의 구리선을 모두 벗겨내고 새로 사온 선을 감기 시작했다. 1주일쯤 그렇게 감았다 풀었다 하던 이완이 마침내 모터를 고쳤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와 연구실은 꽤나 고생했을 것이다.

주변 교수들은 틀림없이 “그것 봐라. 안 될 거라고 했지”라며 야유했을 게 뻔했다.

이완은 손재주가 뛰어났다. 내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는 제자 중 한 명이다.

내가 UCLA에서 PET를 개발할 때 회로 문제를 해결해 준 인도 출신 만빌 싱 박사와 같은 구세주였다. 이완은 그 뒤에도 연구실에서 고장 난 기계를 도맡아 수리했다. 장비에 문제만 생기면 모두 그를 찾았다. 그러면 이완은 틀림없이 고쳐놓았다.

그런 그에게도 단점은 있었다. 자기가 연구한 것을 십분 표현하지 못했다. 어떤 학생은 평소 빤질거리다가도 보고서를 내라고 하면 자기가 한 것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이 써오는데, 이완은 스스로 한 것의 절반 정도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나는 그래도 그가 밉지 않았다. 워낙 성실하고 손재주가 좋아 그의 덕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장비가 고장 나면 수리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연구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까웠는데 그는 그런 손실을 최소화했다. 그가 전자석 콘트롤 모터를 고친 것은 KAIST 시절 잊지 못할 추억 중의 하나다.

나는 연구실 운영에 크게 기여한 이완을 연구실장에 앉혔다. 연구실 살림을 도맡아야 하는 자리다. 그 권한도 막강했다.

내가 미국에 있거나 자리를 비웠을 때 1000만원까지는 연구실장 재량으로 쓰고 사후 보고하도록 했다. 당시 사립대 등록금이 50만~60만원이었다. 그는 지금 50대 가장이 됐다.

졸업 이후 만나지 못했지만 그는 연구 장비를 잘 수리하듯 인생도 잘 꾸려가고 있을 것이다.

조장희 <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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